[죽전이야기] 옛것과 새것
[죽전이야기] 옛것과 새것
  • 충청매일
  • 승인 2012.10.2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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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곡천을 가로 질러 불던 가을바람에 출렁이던 들녘의 황금물결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요 며칠 사이에 그 넓은 논의 가을걷이를 거의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기계의 힘이다. 어디 그뿐인가, 수확한 벼를 바로 농협 RPC로 보내어 그곳에서 직접 건조하여 저장까지 하니 우리나라 벼농사만큼은 100% 기계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몇 해전만해도 해거름에 마을 앞 공터나 도로의 한 면에서 벼를 말리느라 분주히 오가던 부부들의 정겨운 모습을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지난 주 수확현장을 돌아보다 우연히 아는 농업인 한분을 만났다.

마침 그분이 벼를 수확하는 날이라며 나를 자기 논으로 안내하였다. 논에 도착하니 벌써 반 이상은 수확을 끝난 상태였다. 그 넓은 들에 사람이라고는 콤바인을 운전하는 기사 한 분과 보조자뿐이고, 커다란 콤바인만 넓은 들판을 쉴 틈 없이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점심때가 되자 점심을 먹자며 논 주인은 어딘가로 전화를 하였다. 그러자 조금 후 광주리에 음식을 가득 담은 아낙들의 바쁜 발걸음은 온데간데없고 요란한 음식점 배달 오토바이가 넓은 농로를 질주하며 달려온다. “아저씨! 자장면 다섯 개 시키셨지요. 어디다 차릴까요?”

“어허, 앞으로 들밥 구경하기는 힘들겠지요.?” “지부장님도, 요새 누가 집에서 밥해옵니까!”

진천쌀은 옛날부터 명성이 높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비옥한 토질과 충분한 일조량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알기로는 처가가 있던 덕산지역이 전국에서 일조량이 가장 높은 곳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신혼초에 처갓집에 가서 장모님께서 해주신 밥을 먹을 때면 밥맛이 좋아 늘 두 그릇씩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처가도 장모님도 모두 떠난 지금, 덕산지역을 찾아 가며는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옛것은 아마 양조장과 아내가 다녔다던 초, 중학교만이 그 터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황금물결로 출렁이던 넓은 논은 수박 비닐하우스로 인해 멀리서 보면 마치 하얀 눈이 내린 것 같고, 밭이 있던 구릉지역에는 커다란 아파트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문화축제가 열리던 날, 아내와 나는 축제장을 ‘휙’하니 둘러보고는 농다리를 보러갔다. 그 이유는 올 초에 아내와 함께 상해를 갔다가 ‘시탕’이라는 운하마을을 관광하게 되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그 곳의 많은 다리 중에는 이천오백년이 넘은 다리가 있다는 말에 그만 우리는 기가 죽었다.

“여보 역시 중국은 대국인가 봐요. 우리 농다리는 천년인데 그 배가 넘는 이천오백년이라니.”하며 부러운 듯 다리를 연신 쳐다보았다.

“여보, 진천 농다리는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거니 사람으로 치며 자연 미인이고, 저 중국 다리는 석수들이 다듬은 다리니 아마 인공 미인이라고 보면 될거요.”하니 아내가 피식 웃는다.

“여보, 행복은 비교해서 얻는 것이 아니요. 내 것을 내가 아끼고 또 그것으로 미래를 꿈꿀 때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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