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의 첫 시집 제목인 ‘바다가 보고 싶다’ 탄생 비화는 삼십대 중반이 넘어 가고 있던 그 당시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했다. L과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을 대학 공부 하며 자연스레 서로의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풍문으로는 지방 국립대에서 미래 교단에 서는 꿈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 정도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각자 일가를 이루고 십 수 년이 지난 후 동창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

L은 그림을 그리는 같은 직업의 부군 사이에서 아들아이 하나를 둔 늦깎이 학생으로 전공 석사과정을 막 마치고 심신이 지쳐 있었다.

나 또한 딸과 아들을 숨 가쁘게 키우고 간신히 한숨 돌리고 있던 차라, 그녀와 나는 어느 순간 하루에도 송수화기로 서로의 안녕을 상기 시키지 않으면 이상한, 그런 관계가 됐다.

그것은 정신의 날이 선 사람들만이 통하는, 말 하여 질수 없는 감정 밖의 말들을 동물적 감각으로 알아차리는 예민한 촉수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거의 날마다를 연애에 빠진 남녀들 같이 우리는 서로에게 감성의 메신저로 상호 작용했고, 그 당시 L은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시를 써 가지고 와 보여 주며, 숙제 검사 받는 학생처럼 나를 대했다.

명예를 위해서 기꺼이 죽을 수 있었던 이십대를 치열하게 지나왔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늘 안과 밖이 허허로웠던 우리들은, 삼십대에도 그 열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고뇌만 가득한 세월을 망연자실 보내고 있었다.

사회는 숙련된 기능공으로서의 역할만 종용했지, 그가 어떠한 사상과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더운 가슴을 가지고 있는지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날마다 절망 속 조울증의 삼십대라는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그 어느 날, 비명처럼 L에게 바다가 보고 싶다고 외쳤다. 그 밤의 도로를 내달려 L은 동쪽으로 말에게 박차를 가하듯 차를 몰았다. 차는 동쪽의 바다를 향해 질주 본능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들이 연주한 그 밤의 합주곡은 흉포한 광시곡이었다.

때론 열망의 다른 표현이 그런 형태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생 일 것이다. 새벽 3시에 출발한 차의 유리창 너머로 희 부연한 여명이 우리들 눈 속을 파고들었다.

-바다를 꼭 눈으로 봐야만 바다를 봤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마음속으로 만났으면 됐지!

나는 혼자 말처럼 L에게 중얼거렸다.

그 새벽 우리들의 분탕질 끝에 L은 그녀의 첫 시집 제목을 ‘바다가 보고 싶다’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그 뒤로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내 개인사 시간도 퇴적층이 되어, 때때로 넘어지고 힘이 들어 비명조차도 속으로 삭이는 시간이 와도, 경험의 시간들이 만들어낸 지혜와 직관들로 아슬아슬한 생의 굽이굽이를 지혜롭게 헤쳐 건너왔다.

초가을 속 서해 바다는 지난 여름과 가을 초입 몇 개의 광폭한 태풍이 할퀴고 지나갔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드높은 푸른 하늘과 상냥한 해풍을 동반하며 무심하기까지 하다.

포구에 정박한 근해 안강망어선들이 만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한 준비로 어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어진 이는 산을 찾고, 지혜로운 이는 바다를 찾는다는 옛 성현의 말씀도 있다.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외로울 때 바다에 간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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