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기 위하여 책상정리를 하고 있으려니 주머니 속 핸드폰이 “띵동”하며 울린다.

날마다 나를 구속하여 꽤나 미움을 받았던 기계지만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마치 누군가의 소식을 기다렸다는 듯이 재빠르게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형! 지금 어디야? 형이 기다리던 무지개가 우암산 위에 떴는데.” “뭐라고 무지개가 청주에 떴다고? 그럼 혹시 진천에도”라는 생각이 들자 화들짝 놀라 급히 건물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그러나 진천 하늘은 아직도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으며 목을 길게 빼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무지개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다시 사무실로 내려오니 핸드폰은 계속하여 “딩동”거린다. 그들이 무지개를 보고 있는 장소는 달랐지만 선명한 무지개는 우암산 자락에 그렇게 떠 있었다. 나는 괜한 조급증을 내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무지개를 보려면 30여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지만 “혹시”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멀리가지 못해 곧 포기하고 말았다. 고속도로는 밀려드는 차 때문에 서서히 굼벵이 도로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에서는 가끔 무지개를 “색동다리”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색동다리에는 수많은 나라의 전설과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성경에서도 노아홍수 후 다시는 인간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징표로 무지개를 보여주셨으니 그 역사성만으로도 대단하다. 나 역시 지금도 무지개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동심의 세계로 빠져드니 무지개의 마력은 시공을 초월한다. 어릴 적 생각을 해보면 여우비가 오락가락 하고나면 무지개가 떴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무지개 색깔이 일곱 가지인 것을 배우고는 호기심에 무지개만 뜨면 그 색깔을 열심히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는 늘 다섯 가지 이상의 색을 찾은 적이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무지개만 뜨면 친구들과 함께 뒷동산으로 뛰어 올라가서는 무지개의 끝을 한참이나 찾았다. 늘 허탕을 치면서 말이다. 나이가 들어 불현 듯 그 뒷동산이 생각이나 찾아가 보았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우리의 꿈과 우정이 아직도 무지개가 되어 커다란 참나무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근래 본 무지개는 작년 10월초 일본 북해도에서였다. 지진으로 인하여 무너진 도로며 마을들을 둘러보기 위하여 조그마한 산을 오르던 중 우연히 바라 본 하늘에는 분명 쌍무지개가 떠 있었다.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먼 산에 걸려 있는 무지개는 우리에겐 또 다른 관광상품이 되었다.

그 때 무지개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다양성과 조화’ 때문이라고.” 만약 무지개가 빨간색이나 보라색 하나로 이루어 졌다면 저렇게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색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무지개가 되듯 우리 사회도 다양한 의견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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