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는 소위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세대이다. 우리 세대가 정부의 인구정책에 잘 따른 것인지 아님 정부의 홍보효과가 그만큼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째든 친구들을 보면 거의가 자녀는 2명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자녀 2명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즉, 자녀는 2명이 아니라 3∼4명이 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50대인 우리 나이에 벌써 부부만 집을 지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속 모르는 사람들이야 ‘제2의 신혼생활’이라고 부럽다고 하지만 젊은 나이가 아니다 보니 신혼생활의 자유로움 보다는 오히려 ‘가정의 적막함’으로 외롭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 같다.

우리 집만 해도 그렇다. 큰 딸은 대학을 외지에서 다니다 보니 4년 동안 얼굴 본 날을 손으로 꼽으라면 꼽을 정도다. 졸업 후에는 공부를 더 하겠다고 미국으로, 중국으로 유학길에 오르더니 이제는 아예 직장을 상해에 두었다. 이러니 말만 가족이지 일 년에 얼굴을 마주 보는 날은 며칠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들은 효자(?)다. 집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늘 우리 부부 옆에 있었으니 말이다. 원하던 대학을 실패했을 때 아들보다 더 서운해 했던 우리 부부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서운함이 기쁨이 됐고 즐거움이 됐다. 나는 시간이 나면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며 ‘부자의 정’을 나누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또 공부하는 전공이 서로 비슷하다 보니 아들과 나는 가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진지한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의 학문적인 성숙을 직접 느낄 수 있어 아들은 분명 나의 기쁨이었다.

“그래, 아들아! 열심히 공부하렴. 너는 분명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될 것이다. 암 되고말고.”

입영 신체검사를 하던 날 시력이 나빠 군대를 가지 못하게 되자 아들은 한 동안 침통해 했다. 우리 부부는 아들이 우리 곁에 함께 있을 수 있기에 오히려 잘 됐다고 내심 기뻐했는데….  결국 아들은 눈 수술을 한 후 재검을 받고는 늠름한 모습으로 군대를 갔다.

작년 12월 마지막 날, 아들은 길고도 긴 2년의 군대생활을 잘 마치고 환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아버지, 어머니! 이젠 군대도 갔다 왔으니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마지막 휴가 때 서울에 가서 영어학원과 하숙방을 미리 구해 놓았으니 내일부터 서울 가서 공부하겠습니다.”

“뭐라고! 아니 여보, 우리 아들이 이제 우리와 함께 있는게 아니예요? 이런 불효자라고.” 아들은 2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밤낮을 잊은 채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2달 후 자기가 원하던 미국 교환학생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지금도 우리 딸과 아들이 우리 부부에게 효도를 하는 것인지 아님 불효를 하는 것인지 애매하기만 하다. 이달 초 아들은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우리에게 또 이별의 아픔을 남겼지만 돌아 올 때는 분명히 오늘보다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더 성숙해 져서 올 것이다.

“아들아! 나는 오늘이 네 인생의 최고의 날이 되기를 기원한다. 대신 너는 오늘이 네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열심히 노력하길 바란다. 조국과 너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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