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중앙본부에서 처음 담당했던 업무는 전국에 있는 ‘농기계 공동이용 조직’을 활성화하고 관리하는 업무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농기계 가격은 비싼 반면 이용 일수가 적다보니 농기계 효율성이 문제가 됐다. 그래서 생각해 낸 제도가 농기계를 마을 단위로 구입해 공동으로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조사한 결과는 이 제도가 생각보다 실효성이 적다는 것이었다. 우선 농사가 시기를 다투는 일이다 보니 서로 먼저 농기계를 쓰려고 경쟁을 하게 돼 결국 이웃 간에 갈등의 원인이 됐다. 또 공동이용은 구성원 간 책임감이 없어 농기계를 사용한 후 방치하기가 일수라 고장이 잦았다. 이런 원인들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모양으로 제도개선도 해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 때 나는 2가지 큰 경험했다. 하나는 이론과 현실 간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유욕이 매우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유욕도 이제는 경제원리에 의해 많이 변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승용차’가 아닌가 한다. 길을 다니다 보면 전에는 자주 보지 못하던 ‘허’자 번호를 가진 차들이 눈에 많이 띤다. 이는 차를 소유하는 개념에서 임대하는 개념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아름다운 경치까지 임대해 쓰자는 차경(借景)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그것도 무료로. (사실 무료는 아닐 수도 있다. 세금을 내고 있으니.)

내가 경치를 빌려 쓰는 곳은 가경천변, 일명 ‘살구나무 거리’로 왕복 8km 정도가 된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 그 곳은 풀만 무성한 황무지 언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살구나무 3천 그루가 우거져 있고 그 아래 가경천은 하수처리 시설이 완료돼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봄에는 하얀 꽃으로 꽃비를 내리고, 여름에는 노란 열매로 먹을거리를 제공하며, 또 가을에는 단풍으로 우리를 반기니 어찌 임대해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얼마 전 태풍으로 바람이 많이 불던 날 아내는 이곳에서 떨어진 살구를 잔뜩 주어왔다. “여보! 그게 다 주어 온거요?” “그럼요, 요새 사람들은 먹을 것이 지천이라 그런지 떨어진 살구는 줍지도 않아요. 내가 쨈을 한번 만들어 볼테니 기대해 보세요.”

다음 날 아내는 정말 살구로 잼을 만들어 병에 넣어 뒀다. 병을 열어 맛을 보니 약간 신듯하면서도 살구향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저녁 간식으로 아내와 함께 빵에 잼을 발라서 먹어보니 살구가 그대로 빵에 녹아 있는 듯했다.

식사 후, 어릴 적 살구나무 추억을 회상하며 아내와 함께 ‘살구나무 거리’를 걸어 보았다. 발산교를 막 지나 죽전교로 향하려니 몇몇 사람들이 가경천 변을 따라 듬성듬성 모여서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해서 잠시 들려보니 물속에는 수많은 잉어들이 사람들이 던져 주는 과자를 먹으며 유유히 헤엄치며 있는 것이 아닌가!

“야! 이제 보니 살구나무만 임대할 것이 아니네. 가경천 잉어까지 임대해야겠는데. 이런 좋은 환경을 놔두고 왜 비싼 돈을 써가며 전원주택을 소유하려고만 하는지 모르겠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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