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꽃’ 한 구절이 생각난다. 존재가 무엇인지 성찰한 참 아름다운 시이다. 

우리 삶도 이처럼 아름답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직장에서의 위계 ‘양날의 칼’

하지만 우리는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항상 아옹다옹한다. 이것은 어쩌면 서로에게 의미 있는 꽃이 되기 위한 끊임 없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삶의 본질은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로를 알아 가는데는 기본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무엇인가 결핍되고 그로 인해 불협화음이 발생한다.

직장생활에서 상사, 부하, 동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모 신문사에서 지난해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4.7%가 ‘보기 싫은 상사와 근무하고 있다’고 답한 반면, ‘본인이 꼴 보기 싫은 상사’인지 묻는 질문에는 76.7%가 해당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나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을 못하는 것이 일을 하다 보면 누구와도 트러블이 생길 수 있고 상대가 좋게 눈 감고 넘어가면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가 흥행에 성공한 후, ‘직장상사 날리기’라는 플래시 게임이 등장했었던 기억이 난다.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신입사원이 직장상사 엉덩이를 힘껏 차서 멀리 날려 보내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직장상사 날리기’게임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직장상사는 동료나 부하직원보다 연배가 높고 혹시 모를 불이익이 염려돼 불만을 표시하기가 어렵기에 게임으로나마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나타난 현상으로 볼수 있다.

감정은 참 오묘하고도 간사해서 상처를 주기도 쉽고 받기도 쉽다.

사실 직장에서의 위계는 어려운 일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상대를 다치게 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필자는 이 위계의 책임을 느낀다. 항상 위 아래가 부드럽게 공조 되도록 최선을 고민하지만, 언제든지 마찰은 생길 수 밖에 없다.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다른 사람을 나에게 반하게 하려면 자신이 먼저 그 사람에게 반해야 한다.

친한 친구도 처음에는 마냥 좋다가 세월이 흐르다보면 그런 기분은 다 어디 갔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잘 극복하면 정말 전보다 더 뿌듯하고 돈독한 사이가 되듯이 서로 최고의 존재인 꽃이 되고 싶다면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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