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째 비다운 비가 오지 않으니 가뭄으로 전국이 난리다. 어떤 분은 4대강 공사로 인해 이 정도의 가뭄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왜 언론에서는 연일 가뭄소식을 전하고 있는지 의문이 간다.

진천이야말로 물이 풍족한 곳이라 가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돼 출장을 나가 보았다. 일 전에 신문을 보니 충북지방 저수율이 50%도 안 된다고 하는데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논에는 초여름의 따가운 햇볕과 풍족한 물로 인해 벼 크는 소리가 들리지만 밭작물은 경우가 달랐다. 한참 커야할 옥수수며 깨가 크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요, 잎까지 비비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쳐다보고만 있어야 하는 고령의 농민들 가슴은 숯이 됐을 것이다.

며칠 동안 가보지 못한 초평저수지와 백곡저수지가 궁금해졌다. 가던 길이기에 먼저 초평저수지를 가보니 그 많은 물들은 어디로 갔는지 저수지 바닥이 알몸을 드러내 놓고 있다. 늘 초평 저수지를 가득 메우고 있던 낚시 배들도 저수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그들도 갈라지는 저수지 바닥을 보면서 기우제를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이야 수많은 저수지가 있고 양수기며 급수차 등 장비가 잘 갖춰져 웬만한 가뭄 정도는 걱정을 하지 않지만, 40∼50년전만 해도 가뭄은 국가적인 전쟁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가뭄이 들면 논 가장자리에 있는 둠벙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는 밤새도록 횃불을 밝히고 물을 퍼 올렸다. 양수기도 귀한 시대였기에 오직 인력으로 물을 펐다. 기약 없는 전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을 지치게 했다. 환히 밝히던 횃불도 힘이 부쳐서 서서히 사그러질 때면 가쁜 숨소리와 둠벙의 두레박 소리만 남아 밤의 허공을 가른다.

이때 먼 하늘에서 번쩍번쩍 번갯불이 보이기 시작하고 바람 속에서 흙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누군가가 전쟁 종식선언을 한다.

“어허, 비가 올 모양여, 이제는 물꼬를 봐야 하나. 자 자, 고생들 했구먼.”

그 둠벙은 커다란 저수지가 생기고, 논을 경지정리하면서 없어졌다. 이제는 아주 산골지방 천수답 논에나 간 혹 보이곤 했는데 이 둠벙이 요사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고 한다.

둠벙이 가뭄 해소에 효자 역할을 하고 있음은 물론 생태계 복원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남 고성군에서는 남아 있는 둠벙을 개보수하고 있고, 더 많은 둠벙을 새롭게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가 어릴 때 멱도 감고, 올챙이, 방개를 잡던 ‘둠벙 놀이터’가 오랜 세월을 지나 “신장개업”한다니 감회가 새롭다. 그러나 그 옛날 함께 뛰놀던 우리들 친구처럼 지금의 아이들도 둠벙으로 모일까? “얘야 논 옆에 있는 둠벙에 가지마라. 물이 깊어 위험하고 물도 더러워 눈병날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할아버지 할머니 목소리가 바로 우리 세대가 아닌지 모르겠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