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이 지나자 청첩장이 봇물 터지듯 날아온다. 지난 주일에는 3건이더니 이번 주일에는 5건이다. 직장 내에서의 청첩장도 많지만 우리 나이가 50대 후반이다 보니 자녀들이 거의 혼기에 있어서 친구들로부터 오는 청첩장도 많이 늘었다.

열흘 전쯤인가 보다. 같이 근무했던 A여직원으로부터 청첩장과 함께 간단한 편지를 받았다. 청첩장을 받아 든 순간 평소 내가 아끼던 직원이라 꼭 내 딸이 결혼하는 것과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 여직원이 그저께 아침 일찍 전화를 한 것이다.

“지부장님 제가 직접 청첩장을 드려야 하는데 바빠서 우편으로 보냈어요.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면목 없지만 저의 결혼식 주례 좀 서주셨으면….”

사실 결혼식 날은 진천군 농업인들의 큰 행사가 있어서 결혼식에 부득이 내 대신 아내가 참석할 계획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여직원에게 이런 사실을 말하며 양해를 구했다.

“지부장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해요. 신랑이 대학 은사님께 주례 부탁을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기셔서 주례를 못 서신다는 연락을 받아서요. 신랑과 함께 의논한 결과 저를 가장 잘 아시는 지부장님께 부탁한 것인데”하며 크게 낙담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사적인 일을 핑계 삼아 공적인 일을 불참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날 귀가해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A여직원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됐다.

“여보, 행사시간과 예식시간을 잘 살펴보셔서 주례가 가능한지 알아보시죠. 신부가 얼마나 애가 타면 멀리 있는 당신에게 부탁했겠어요”하며 아내는 나를 은근이 압박했다.

다음날 아내 말대로 행사일정표와 결혼시간표를 자세히 살펴보니 다행히 결혼시간이 오후 2시 반이라 부지런히 서두르면 가능할 것 같았다.

미리 서울 가는 차편이며 관련되는 일처리를 알아 본 후에 전화로 주례 승낙을 하니 A여직원의 목소리에서 환한 얼굴이 보인다.

결혼식 날, 새벽부터 동동 걸음을 쳐서 결혼식장에 도착하니 점심 먹을 시간도 없었다. 주례석에 앉아서 잠시 냉수로 목을 축이고는 사회자의 주례소개와 함께 단상으로 나갔다.

신랑신부 입장과 혼인서약이 지났는데도 경건해야 할 예식장은 마치 시골장터처럼 시끄러웠다. 아마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나 친구들 간의 인사와 이야기꽃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하객 여러분, 주례로서 부탁 말씀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는 여러분이 사랑하고 아끼는 두 분의 결혼식장입니다. 잠시 사적인 이야기는 중지하고 정숙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잠시 조용하다가 다시 시끄럽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이 신성한 결혼식이 단지 경제적인 상부상조의 장이며, 오랜만에 만나는 회합의 장소였던 것이다.

나는 갑자기 그동안 무료 예식장에서 주례를 서면서 보아왔던 감동의 결혼식이 그리워졌다.

비록 화려한 장식도 없는 조그마한 결혼식장에서 50여명도 안 되는 하객이 모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축하해 주던 그런 결혼식장이 자꾸만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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