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덕산면 석장리는 4세기께 철을 제련하던 제철로가 발견된 곳이다. 그런 의미 있는 지역이라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백곡저수지 근처 역사테마 공원 내에는 종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종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티벳 등에서 사용하던 종 150여개가 전시돼 있어 종의 탄생과 변천사는 물론 범종을 만드는 과정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관람을 하고 나오다 호기심에 박물관 마당에 전시돼 있는 성덕대왕 신종(모형)을 타종해 보았다. 당목을 뒤로 당기다 살짝 놓으니 “탕”하는 타음과 함께 맑고 은은한 여운이 1분여 동안 계속됐다. 오오! 이 울림! 내 영혼을 깨우던 바로 그 소리였다.

단양 오성암에서 무쇠도 녹일 열정으로 젊음을 불사르던 때이다. 새벽마다 울리는 종소리가 좋기도 하고, 고령의 주지스님의 노고(?)를 덜어 드릴 양으로 넌지시 건의를 올렸다.

“주지스님, 제가 새벽종을 치면 안될까요?”하자 주지스님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셨다. “왜? 공부하기 싫어요? 학생은 학생 공부를 해야지 왜 중 공부를 하려고 해요”하시며 ‘휑’하니 나가셨다. 얼마나 무안했었던지….

그 후 몇 달이 지나서였다. 주지스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그래, 지금도 아침쇳종을 하고 싶어요? 그것도 부처님께 공덕을 쌓는 일이긴 일이지. 어째든 아침쇳종은 예불의 하나니 괜스레 설렁설렁 하면 당장 하산 시킬테니 마음 단단히 먹어요”하시며 한지에 필사한 불경 책 한 권을 나에게 주셨다.

다음 날부터 새벽 3시에 일어나 계곡물에 세수하고는 대웅전 옆에 있는 종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경건한 마음으로 종을 치기 시작했다. “땡∼땡∼땡∼” 종소리는 어둠속의 제비봉을 깨우고는 곧바로 울림이 돼 산 아래 마을까지 달려가 사람들을 깨운다.

그 소리는 제비봉의 울림이었고 내 영혼의 울림이었다.

아침마다 거울 속 반백의 머리를 보며 이제는 나도 나이 듦을 인정하고 싶다. 서글픈 일이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얼굴뿐만 아니라 목소리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강의를 한다든가 아니면 시끄러운 곳에서 잠시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나면 목이 따끔거리며 아프다. 또 목이 쉽게 쉬어버려 젊었을 때와 같은 탄력 있는 목소리나 울림은 이제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영원한 나만의 소리 만들기 즉 악기를 배우는 것이었다. 악기는 목소리 같이 나이가 들었다고 음색이 변하는 것도 아니요 울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내가 노력만하면 얼마든지 나의 소리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고민 고민 끝에 나와 비슷한 몸매와 소리를 갖춘 악기인 첼로를 선택하고는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내 소리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는 첼로의 현에서 내 영혼을 깨우는 소리, 세상을 밝히는 울림이 새롭게 시작될 것을 확신하며 오늘도 활을 힘차게 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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