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은 마치 완벽한 한 세계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느긋함과 설렘, 친절함, 여유로움, 약간의 무심함. 우리가 삶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덕목들이 깃들어 있었다.”

골목. 단어 자체가 고루하거나 아늑하다. 골목하면 떠오르는 쇠락하고 남루하고 누추한 풍경 속에는 우리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다정한 장면이 숨어 있다. 그 안에는 시간이 만들어낸 사람들의 기억이 있고, 삶의 흔적이 있으며 따스한 공기가 함께한다. 낡았고, 오래될수록 가보고 싶은 곳이 골목이다. 최근 이러한 골목들이 잊혀진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추억의 공간이자 느리게 살아가는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여행 작가 최갑수의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는 사람들의 기억과 삶의 흔적과 따스한 공기가 남아 있는 골목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1년 동안 전국을 누비며 찾아낸 골목 산책길들을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잊혀가고 있는 우리의 골목길을 작가는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들어가 천천히 음미하고, 바라보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즐기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 어떤 누구의 사연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작은 모퉁이 길, 이리저리 돌아난 낡은 계단 앞에서 멈춰서 보라고 한다.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곳. 어쩌면 골목 산책의 매력은 거창한 볼거리보다 계단, 화분 등 평소 스쳐 지나쳤던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주는 골목산책 에세이다.

골목을 소재로 다룬 이 책이 어느 여행 에세이보다도 소소한 매력을 가진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새로 생겨나는 길들은 한없이 넓다. 넓은 길로 인해 옷깃이 스친다는 것이 오히려 타인에 피해로 인식되는 사회가 돼버렸다. 옷깃의 스침이 불가피한 골목의 경우는 어떨까. 어쨌든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 몸을 돌리며 때로는 눈 속에 서로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찰나의 시간도 생길 것이고, 옷깃을 스친다는 것이 불쾌한 피해가 되지는 않는다. 산 속 오솔길을 걷다 행인을 만나 눈인사를 하는 그런 반가움이 골목 속에 있다. 어느 공간보다 짙은 스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골목이기에, 더욱 짙은 사람 냄새를 내뿜는 에세이다.

닮은 듯 다른 동네 특유의 개성을 하나하나 글과 사진을 따라 읽다보면 마치 실제 그 골목을 따라 산책하는 것 마냥 시간이 느긋이 흐르고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질 것이다.

무언가 잃어버린 듯 마음 한켠이 허전한 날이면 한번쯤 낯선,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다감한 동네를 한바퀴 터벅터벅 걸어보는 건 어떨까. 골목 끝자락에 닿을때 즈음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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