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오페라 무대서 노래하는 작은 거인

후학들에게 서양서 쌓은 지식 환원

세계에선 지방대 출신 핸디캡 없어

가난한 농부의 아들, 충주 공고진학, 독학으로 청주대 음대 합격, 그리고 700달러를 쥐고 유학(불가리아 소피아 음대·베를린 국립음대 졸업)을 떠났던 연광철(48)은 미국·유럽의 오페라 극장에서 세계 정상급 베이스로서 ‘노래하는 작은 거인’으로 우뚝 섰다. 그의 성공이 단지 자수성가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그가 동양인으로서 세계 정상의 오페라 무대에 선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는 1993년 파리 국제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 우승과 동시에 도밍고로부터 ‘세계 오페라계의 떠오르는 보석’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본지는 서울대 음대에서 성악을 가르치며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에서의 공연으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연 교수를 인터뷰했다.

▶서울대 교수로서의 의미와 역할은.

서울대를 지정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교육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에 작은 의미가 있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동안 세계적인 무대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에 이바지하는 일은 음악가로서의 지식을 환원하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로 발탁된 동기는.

모교 출신 교수를 배제하는 임용쿼터제 덕을 봤다. 그동안 세계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커다란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세계적인 차원에서 볼 때 그리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다. 내가 한국에서 교수직을 맡게 된 것은 세계 오페라계의 손실이라고 대부분의 외국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세계적인 성악가로 등극하기까지의 비결은.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지방대 출신이라는 것이 아무런 핸디캡이 되지 않는다. 서양무대에서 주요한 역들(왕·제사장 등)을 해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눈을 감고 들었을 때 잘 캐릭터를 그려낼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오페라는 시각적인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노래를 조금 못해도 유럽인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결국은 시각적인 것으로 경쟁하기 보다는 음악으로 경쟁했다고 할 수 있다.

▶국제 오페라 무대에서 성공한 배경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거구의 서양인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엄청난 준비와 연습을 해야 한다. 악보뿐만 아니라 작곡가에 관한 모든 것까지 습득했다. 바그너 오페라를 공연할 때는 그의 애인과 후원자까지 집중 해석하기도 했다.

▶올해 주요 공연 계획은.

비엔나 국립오페라 하우스에서 ‘바그너의 파르지팔’, ‘베르디의 돈 카를로스’를 공연한 후 베를린 국립오페라하우스에서 도밍고와 ‘베르디의 시몬보카네그라’,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루이자 밀러’공연 등이 이어진다. 11월엔 워싱턴에서 ‘베토벤의 장엄미사’를, 11월 중순부터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베를리오즈의 트로이인’을 공연한다.

▶음악 전공자들의 해외유학이 범람하고 있는데 반드시 필요한가.

전공이 서양음악이 아니라면 유학 갈 필요는 없다. 음악에서의 유학은 단순히 이공계처럼 짧은 시간에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는 달리 음악은 수백년의 역사 속에 이뤄진 문화이기 때문에 그 문화 속에서 살아보지 않고서는 음악을 이해하기 어렵다. 가령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잘 할 수 있겠지만, 국내에서 살지 않고는 문화를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외국인들이 판소리나 농악을 배운다면 국내에 살아보지 않고서는 그냥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하다.

▶후학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게 있다면.

희망은 자신이 원하는 것 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그것이 하나라면 좋겠지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원하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 꿈으로 다가가는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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