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박병철 전 한국지명학회장

편의에 따른 관리… 일관성 없어

전문성 갖춘 국가기관 설립해야

지명(地名)을 둘러싸고 이해당사국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최근 열린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 ‘동해’ 표기 논의가 한국과 일본의 의견차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2017년 총회로 미뤄졌다. 이는 바다에 부여할 명칭이 단순히 그 이름 자체로 끝나지 않고 정치, 경제, 국제적 역학관계와 얽혀있어 이해당사국들이 보다 유리한 지명에 집착하고 있어서다.

충청매일은 국내 지명 연구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박병철 전 한국지명학회장을 만나 ‘지명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최근 언론에 지명법 제정을 촉구한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우리나라는 지명을 행정지명, 자연지명, 해양지명으로 구분해 관리하고 있다.

행정지명은 행정안전부에서 자연지명은 국토해양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그리고 바다와 관련된 명칭은 해양조사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각 부처마다 편의에 따라서 지명을 관리하다보니 정책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고 책임의 한계도 분명하지 않다.

지명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전문적인 국가기관이 있어야만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효율적인 지명정책을 수립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 ‘지명법’ 제정을 촉구한 것이다.

▶‘동해’표기를 되찾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명명의 대상이 되는 구역은 명칭을 뛰어넘어 우리나라와 일본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곳이다.

‘동해’ 단독 표기가 최선이지만 ‘일본해’와의 병기 문제 등을 고려하면서 보다 ‘위상이 강화된 국가기관’이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민간기구(NGO)의 역할도 중요하나 이해당사국간 외교문제 등으로 한계가 있다. 정부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위상이 강화된 지명관련 국가기관을 설립하고, 그 기관이 책임지고 동해 표기를 비롯한 우리나라 지명의 국제화, 전문화를 추진해야한다.

▶‘도로명주소법’발효를 앞두고‘지명법’제정이 필요한 지

‘지번’을 위주로 한 주소체계가 내년부터는 ‘도로명주소’로 전환된다.

그동안 행정안전부가 중심이 돼 도로명주소를 준비해 왔으나 너무도 긴 시간을 소비했고 지금도 상당수의 국민들이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명과 관련된 전문성을 갖춘 국가기관이 없어 기획에서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진행됐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전문성을 갖춘 국가의 독립기관이 해당 업무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처리했다면 보다 빠르게 도로명주소 제도가 정착됐을 것이다. 행정지명의 일부인 도로명주소를 포함해 모든 지명을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는 국가의 전문기관과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지명법’에는 어떠한 내용을 담아야 하나

지명법은 지명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해 1. 지명관리 업무를 총괄하고 조정할 수 있는 지명 관리 전담조직의 설치와 기능, 2. 지방자치단체의 지명관리 업무조직, 3. 일제 잔재가 남아있는 지명을 비롯한 지명을 정비할 수 있는 근거, 4. 지명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수집,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에 대한 근거 규정, 5. 지명의 시공간데이터베이스를 구축·운영할 수 있는 근거, 6. 지명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지도 연동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근거, 7. 국내지명은 물론 남극을 비롯한 국외지명 표준화와 국제적 홍보체계 구축에 관한 규정, 8. 지명관리 관련 연구 및 교육에 관한 규정 등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한국지명학회는 어떤 학문을 연구하며 지명정책과 관련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나

한국지명학회가 창립된 것은 1997년이다.

지명을 연구하고 지명관련 정책을 제안하는 학회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청주이 지명’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학회 창립에 깊이 관여했다.

지명학회 회원들은 국어학과 지리학, 역사학을 공부하는 대학교수들로 구성돼 있다.

주로 문헌에 나오는 고지명을 연구하는 회원들이 많지만 최근에 오면서 연구실에만 머무르는 학문이 아닌 현실세계에 기여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초대 총무이사를 비롯해 회원들이 그동안 학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지명과 관련등 나름대로 많은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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