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인쇄문화를 어느 민족보다도 일찍부터 발달시켜왔다는 것은 이제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1377년 청주목 흥덕사에서 간행된 금속활자본 ‘직지’와 경주 불국사 다보탑에서 751년 경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두루마리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이 다라니경은 간행연도를 두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본이다.       

직지 목판 2년4개월 정도 소요

각수(刻手)란 목판에 글씨를 새기는 기술자를 말한다. 목판에 글씨를 새기기에 앞서 우선 명필가가 목판에 새길 글씨를 종이에 정성껏 쓴 다음 거꾸로 판목에 붙이고 각수가 새겨 나가면 되는 것이다. 특히 사찰본 목판본에서는 간기에 거의 반드시 글쓴이와 각수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목판에 새긴 판들은 오래도록 영구히 두면서 수시로 많은 양을 찍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금속활자가 발명됐음에도 목판의 새김은 여전히 인기를 누렸다. 목판에 새기는 책들은 주로 불교서적이 대다수이기에 각수들 또한 승려들이 많았다. 그래서 관서에서 목판으로 책을 찍을 경우에는 사찰의 인쇄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또한 이들 각수 역시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전국을 다니면서 판각을 했으며, ‘대장경’과 같은 국가적인 사업에는 별도로 국가에서 각수를 양성했다.  

목판을 새긴 곳을 개판처라고 하는데 개판처에서 새긴 것을 개판(開板) 또는 개간(開刊)이라 하고 단지 판을 보관하기 위해 그곳이나 다른 곳에서 판각을 하였을 경우에는 장판(藏板) 또는 유판(留板)이라 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개판처에서 아예 판을 보관할 장소를 명기 한 것도 있다.  

각수들은 목판에 특히 불교 서적의 경우에는 불심으로 작업을 하는데 하루에 얼마나 새길 수 있을까?  아주 능숙하게 달인의 경지에 오른 각수가 하루에 평균 30∼50자 정도를 새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평균 각수 1명이 40자를 새긴다고 볼 때 ‘직지’ 목판본의 경우 20자 11행이 반엽이므로 1판은 대략 440자 정도가 되며 1판을 새기는데 대략 11일 정도가 걸리는 셈이며, 전체가 80장 즉 80판이니까 이 판을 세기는 데에 적어도 880일 약 2년 4개월 정도가 소요된 셈이다. 

1378년 6월에 간행된 취암사본 ‘직지’와 ‘백운화상어록’을 간행함에 있어 ‘직지는 이암선화 천긍(貳菴禪和 天亘) 스님 혼자서, ‘백운화상어록’은 박총(朴叢)과 김계생(金繼生) 두 명이 판하본 글씨를 썼다. 그리고 이 두 책을 새김에 있어서는 종탁과 참여, 신명(信明) 등 3명이 공동 작업을 했다. 그렇다면 금속활자본 ‘직지’가 간행되기 4개월 전인 이구온보(李玖溫甫)가 ‘백운화상어록’의 서문을 쓴 1377년 3월에는 이미 백운의 제자들이 ‘어록’을 편집하면서 일부는 글을 새기기 시작했음으로 이 시점은 백운의 유고집이 되는 ‘어록’의 초고본이 완성된 시기로 보면 될 것이다. 당시에 이미 ‘직지’는 금속활자본이 거의 완성시기에 있었으므로 취암사본은 ‘직지’를 먼저 목판으로 새겼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취암사본 ‘직지’가 1378년 6월에 간행되고 ‘백운화상어록’이 1달 늦은 7월에 각각 계속돼 간행된 것으로 볼 때 대략 1년 3개월에서 4개월이 걸린 셈이다. 그렇다면 이 두 책을 모두 3분이 새기는 데에는 최소한 5년 정도가 걸렸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간행된 시점은 백운 선사가 입적한 1374년 직후부터 바로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청주·여주, 두 곳서 작업했을까

그런데 여기서 의문시되는 것은 과연 이 두 책을 금속활자와 목판본과 같은 두 가지 인쇄방법으로 간행하면서 청주와 여주 두 곳에서 분담해 작업을 했을까 하는 문제이다. ‘직지’의 목판본과 금속활자본 모두 청주 흥덕사에서 주관하며 판본의 각각 책임자가 다를 뿐 같은 장소에서 같이 시작하고 백운 선사가 입적한 취암사에는 상징적 의미로 목판만 갈무리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 여건 상황으로 인쇄기술과 재료의 문제 등으로 두 곳에서 나눠 금속활자본은 청주에서 목판본은 여주에서 각각 출판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지금에서 출판 장소를 정확하게 밝히는 것은 당시 인쇄인들만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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