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월이면 입학식이 행해진다. 선생님들은 입학식 준비로 분주하다. 입학을 환영하는 플래카드도 준비해야하고  가슴에 달아줄 명찰도 마련한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입학식이 있다. 어린이집부터 대학원까지 참으로 많은 학교에서 입학식이 행해진다. 그런데, 좀 색다른 입학식이 있다. 입학식이니까 당연히 선생님도 분주하고 학생들도 설렌다.

모르는 것을 깨닫는 즐거움

선생님들은 팸플릿도 만들고 학생 명렬표도 만들고, 입학식장에는 유치원 입학식처럼 풍선을 달아 장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입학하는 학생들은 연령이 고르지 않다. 10대 학생도 있지만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시다. 연령 차이가 많을 때는 자그마치 50년 이상이 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학교이기에 이렇게 연령차이가 나는 학생들이 모일까? 그 학교는 바로 방송통신고등학교이다. 이 학교는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다 중도 탈락하는 10대 학생들이 입학 또는 편입하는가 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학업을 중도에서 멈춘 성인들이 다니는 학교이다. 배움에 대한 갈증, 지식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사시던 분들이 모이는 학교이다.

40년도 더 오래전,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음에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못하고 남모르는 서러움의 눈물을 한 없이 흘리며 그 한을 가슴에 묻고 사시던 60대의 어느 할머니에게 복음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생활정보지에 소개된 일요일에 공부하는 학교가 있다는 소식! 할머니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동안 가슴에 묻어온 몇 십 년의 한을 풀고자 드디어 큰 결심을 하셨다. 그리고는 방송통신고등학교의 문을 두드리셨다.

설렘으로 시작한 입학식. 할머니에게도 그토록 그립던 선생님이 생기고 급우가 생겼다. 얼마나 부르고 싶던 이름인가? 선생님! 할머니는 선생님을 부르며 까맣게 잊었던 학문의 문을 다시 두드리신다.

할머니는 이제 어느 골목 전봇대 뒤에 숨어 고등학교를 가는 갈래머리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눈물짓지 않아도 된다. 학교 얘기를 하는 자리에서 가슴 조리며 애써 편안한 표정을 억지로 짓지 않아도 된다. 격주로 가는 출석수업 일에 참석하면 된다. 할머니는 2주를 기다리며 평일에는 인터넷으로 원격수업에 참여한다. 손꼽아 기다리던 출석수업 일에는 반장 부반장도 뽑았다. 공부가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다. 그래도 그게 바로 공부의 멋 아닌가? 모르는 것을 깨닫는 즐거움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지 않은가? 그런 마음으로 한 문제 한 문제 풀어 나가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신다.

때로는 10대 동료 학생들과 함께 같은 교실 같은 책상에 앉아 학업에 전념하면서 손자 손녀 같은 학생들의 고민도 들어주시고 해결책도 슬며시 제시하시면서 그들의 상담역이 되시곤 한다. 그런데, 할머니의 그 같은 한을 풀고자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10대에 중도 탈락한 학생도 있지만, 20대부터 60대, 70대까지 각 반별로 학생들의 연령은 의외로 고르게 분포돼 있다. 할머니는 학교에 나오시면서 친구도 생겼다. 배우고 싶은 욕구를 가진 분들이 의외로 많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이제 3개년의 학업을 마치면 ‘나에게도 고등학교 졸업장이 주어진다.’ 할머니에게는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큰 꿈이 있다.

배움에는 열정만이 있을 뿐이다

전국에는 이런 방송통신고등학교가 40개가 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부설로 설립된 이 방송통신고등학교에는 오늘도 배움의 한을 풀기 위해 학업에 매진하는 학생들로 넘쳐난다. 누가 배움에 때가 있다고 했는가? 배움에는 때가 따로 있지 않다. 오직 배움에 대한 열정만이 있을 뿐이다. 학교폭력 문제로 전국이 시끄러운 요즈음!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늦은 연세나마 다니시며 향학열을 불태우는 어르신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 사회는 바로 이런 분들이 계셔서 여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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