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가 지났건만 봄을 시새움하는 추위는 아직도 호숫가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다. 차속에서 호수의 평화로움을 조용히 만끽하던 아내는 차가 산모롱이를 막 돌자 갑자기 환호한다. “아! 그래, 바로 이곳이었구나. 초평에 ‘붕어마을’이 있다고 하더니… 여보! 점심이 좀 이르긴 하지만 여기 까지 왔으니 우리 붕어찜 먹고 갑시다. 다들 맛있다고 하던데”하며 내 눈치를 살핀다.

“그럽시다. 그나저나 이 많은 음식점 중 어디가 제일 맛있는 곳인지 알 수가 없구려.”

아내는 한동안 식당을 둘러보다 호수가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한 음식점으로 나를 안내했다.

아직 점심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식당은 한산했다. 아내와 나는 봄빛이 조금씩 보이는 호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밖이 왁자지껄하면서 등산복을 입은 단체손님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들 중 누군가가 “두타산 정말 좋은데요. 그나저나 내일부터 산불예방 때문에 입산금지라니 안타깝습니다”하자, 옆에서 물을 마시던 분이 컵을 내려놓으며 “어쨌든 우린 갔다 왔으니 다행이죠”하며 맞장구를 친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던 아내는 그 소리에 귀가 솔깃해 그들에게 등산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중 인솔자인 듯한 젊은 분이 자세히 설명을 해 줬다.

“여보! 우리도 두타산 올라갔다 내려옵시다. 영수사 입구에서 우측으로 올라가면 정상까지 4.5km고 왕복 4시간 정도 걸린다는데”하며 나를 살살 꼬드긴다.

“글쎄, 등산화도 안 신고, 지팡이도 없는데”하며 내가 슬슬 꽁무니를 빼자 “여보, 오늘 안가면 5월 중순에나 갈 수 있다는데 이왕 왔으니 올라갔다 옵시다”하며 계속 채근한다. 결국 나는 아내와 함께 두타산을 오르게 됐다.

처음엔 오르막이 계속돼 “오늘 고생깨나 하겠구나” 생각하며 산을 올랐으나 산이 아기자기하고 중간 중간 내리막과 오르막이 교차되다 보니 오히려 즐거운 산행이 됐다. 아내는 등산으로 다져진 몸이라 그런지 늘 나보다 열 걸음 이상 앞서서 올라간다. 거기다 노래까지 응얼거리며 말이다.

해발 600여m의 산이건만 산봉우리마다 오래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기도 하고, 비바람에 넘어진 나무들이 고사목이 돼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으니 마치 1천m 이상의 고산에 오른 기분이었다.

비록 느린 걸음이나 쉬지 않고 오르니 어느 사이 4km 가까이 올라 온 것 같다. 잠시 숨을 고르려고 길가 큰 나무에 몸을 기대고 서서 앞을 바라보자 수많은 계단이 절벽에 꼭 붙어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곳이 마지막 고비인 8부 능선인가 보다.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인데.” 순간 내 숨은 더 거칠어지고, 다리의 힘은 풀리기 시작한다.

“그래, 어찌 산에만 8부 능선이 있겠는가? 지나온 내 인생사에도 수많은 8부 능선이 있었는데… 그래도 쉬지 않고 걸어 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고, 희망찬 미래도 기다려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다시 힘을 내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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