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각 정당의 대표와 그 주요 측근까지 여성으로 이뤄지는 여풍(女風) 신드롬(Syndrome)이 일고 있다.

정치는 반드시 남성들이 전유한다는 원칙은 없지만 과거 극소수의 여성이 정당 대표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었던 것에 비해 상당히 사회적 성숙이 됐다.

그러나 여성의 정치참여는 제도적 장치 부재로 상당히 미흡한 실정이다. 

정치 중심에 서기엔 역부족

영국의 경우 여왕이 존재하고 지금도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들이 대통령 및 수상에서 총리를 맡고 있다.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의 이사벨 마르티네스 데 페론(Isabel Martinez de Peron)으로 1974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특히 남미 지역에서는 여성 대통령이 많은 편이며 현재 전 세계 여성 수상이나 대통령은 17명이나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여성 대통령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여성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오늘날 대통령에 해당하는 여왕을 3명이나 배출했다. 선덕여왕의 경우 진평왕에게 직계가 없자 정치논리에 의해 선택되었지만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해 삼국통일의 초석을 이루기도 했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른 것은 당시에 커다란 정치적 사건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선거제가 아닌 세습제에서 여왕이 등장 한 것은 신라만이 지닌 독특한 골품제도로 남자 성골이 없는 정치적 상황을 명분으로 내세워 선덕에 이어 그 동생 진덕 또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신라에서 세 번째 여왕이 되는 51대 진성여왕은 이전의 여왕처럼 골품제도가 아닌 정강왕(定康王)의 유언에 의해 여동생이 왕위를 이어 받게 됐다.

제정(祭政)이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는 여성이 제사를 주관하면서 사회적 지위가 높았으나 국가의 형성이 정립되면서 남성 중심으로 전이됐다.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미약해진 것은 유교문화의 가부장적 제도 도입으로 그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프랑스에서 1791년 여성권리선언이 발표된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발전된 양성평등국가였다. 특히 신라에서는 향가에 전하듯이 여성의 연애가 자유로웠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을 모두 전담한 것으로 보아 여성들이 가정 경제권을 장악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여성들 또한 다양한 종교행사와 예술활동에 제약이 없었다.  

흔히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남존여비, 남아선호사상으로 여성들이 가장 억압을 받았다고 하나 조선 초기에만 해도 여성들은 법적으로 남자와 평등했다. 17세기 장자 유산 상속제도 이전 유교가 지배적임에도 딸들에게 똑같은 재산 상속권과 제사도 아들들과 돌아가며 지냈다. 또한 결혼을 하면 남자가 장인 집에 들어가 사는 장가(丈家)를 갈 정도로 오히려 여권이 더 강했음을 볼 수 있다.  

남성 위주 사회에서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한 것은 19세기에 본격화 된 서구의 여성 참정권 운동이 시발점이 돼 1893년 뉴질랜드에서 여성 선거권 최초로 인정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수립된 이후부터 여성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됐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고 0.9%의 여성 지방의원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할달제를 적용한 비례대표까지 합해 20% 정도에 그쳐 현실정치의 중심에 들어서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정치에 있어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공정해야 하나 여성할당제, 여성가점제 등은 또 다른 역차별을 가져올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요즈음 언론을 보면 고위공무원, 사관학교, 각종 고시 등에서 여성일 경우 반드시 최초의 여성이란 수식어가 들어가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남성중심적이며, 선거에 표를 의식한 정치적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 정치에 있어 언어와 감성적 능력이 뛰어난 여성들이 주도하게 되는 것이 남성들의 무능함이라는 것은 지나친 역설이다. 오늘날은 정치는 물론 패션과 사회 각 영역에 있어서 성 정체성 보다는 자질과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이다.

인간으로서 평등의 길 모색해야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일에 만족하고 사회 발전에 있어 성차별의 벽,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급속도로 깨지고 있다. 일부 현존하는 생명체 중 절대다수가 암컷 우위이듯이 인간 사회도 여성상위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생물학적 성차는 시대착오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이성이 조화롭게 평등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인류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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