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머리를 감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두 개 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머리 정수리 부분이 훤했기 때문이다. 난 이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속알머리 없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아버지나 형님들을 보면 머리가 좀 빠지시기는 했지만 보기 흉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유독 내가 심한 것 같다. 아무 것도 아닌 머리털도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으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외관상 보기 싫은 것은 물론이요, 겨울에는 머리가 시리고 여름에는 머리가 뜨거웠다.

내 어릴 적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으로 마실 오실 때면 문밖에서 인기척으로 잔기침을 하시던지 아니면 혼자말로 “아이고 이놈의 추위, 머리 시려 마실도 못 다니겠네”하시며 수건을 ‘푹’ 눌러 쓰시곤 들어오셨는데 이제야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우선 생각한 것이 모자였다. 왜냐하면 TV에서 보면 나이 지긋하신 분이나 예술가들이 모자를 쓰고 나오면 왠지 모를 품위와 권위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생각난 김에 아내와 함께 시내에 나가 모자를 사려하니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머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크다보니 맞는 것이 많지 않음은 물론이요, 또 써보면 나에게는 영 어울리지가 않았다. 한 나절을 돌아다녔지만 결국 모자 하나를 못 사고 되돌아오는 데 아내는 나를 ‘힐끗 힐끗’보며 웃기 시작한다. “여보 뭐가 그리 우습소”하니 아내는 결국 웃음보를 터뜨렸다. “여보, 당신에게 어울리는 모자는 없을 것 같아요. 일전에 교회에서 누가 이야기 하던데… 어느 병원인가 가서 치료를 했더니 머리가 많이 났다고.”

나는 아내 말대로 용하다는 의사를 수소문했고, 몇 달 동안 치료를 받았더니 놀랍게도 어느 정도 머리는 복원 됐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멋진 모자에 대한 나의 미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어느 해 겨울날, 출장차 모스크바에 갔는데 추운나라라 그런지 다양한 방한모자가 거리에 지천이었다. 그 중에 하나를 사서 쓰고 다녔더니 같이 간 일행들이 그 모자가 나에게 너무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래,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나에게 맞는 모자 하나가 없겠는가?”

작년 가을 보은향교에서 유교 창시자인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기리기 위한 제례의식(석전대제)에 종사관으로 참여하게 됐다. 종사관은 초헌관, 아헌관과 함께 제례의식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였다.

더구나 보은에 사시는 연세가 많으신 유림들을 모시고 제례의식을 행하다 보니 혹시 실수를 할까봐 온 몸은 긴장감으로 잔뜩 굳어 있었다. 그 때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제례를 위한 의관이었다. 복잡한 의복과 허리띠, 무거운 관(모자)과 가죽신은 부드러운 의복에 길들여진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어느 사이 옛날 관리가 돼 있었다. 꼿꼿한 허리, 느릿느릿한 팔자걸음, 조심스러운 언행 등등.

짧은 시간이지만 종사관으로 임무를 행하면서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봤다. “지금 종사관으로서 주어진 이 의관이 나의 인품이나 능력에 잘 맞는다고 보는가? 혹시 의관이 나의 인품이나 역량에 비해 너무 커서 다른 사람들의 웃음거리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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