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월광수변공원의 박태준 흉상.

은혜정원을 둘러보고 동산의료원 건너편 서문시장 옆에 있는 계성중고등학교를 찾아갔다. 박태준이 다녔던 학교다.

1906년에 설립된 역사가 오랜 학교여서 나무도 울창할 뿐 아니라 건물들도 고색창연했다. 교내에 들어가 두리번거리다 보니 계성교회라고 새겨진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건물 앞에 이 학교 교가가 새겨진 나지막한 비석이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 보도록 만들어진 노래비다. 여기에 작사자로 박태준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작곡자는 ANO NYMOUS(미상)이라고 되어 있었다.

마침 선생님들이 지나가길래 “여기 새겨져 있는 작사자 박태준이 ‘동무생각’을 작곡한 박태준 선생입니까?”하고 물었다.

선생님들은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해 주었다.

그래서 ‘이 학교에 박태준 선생에 관한 자료가 좀 있을까 해서 찾아왔다’고 나의 신분을 밝혔더니 이분들이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권영배 선생님(문학박사)을 소개해 주셨다. 

이날 권영배 선생님은 나에게 박태준 선생에 대한 자료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2006년에 발간된 ‘계성 100년사’를 한 질 주었는데, 많은 참고가 되었다. ‘동무생각’ (1)편에 실은 1930년대 박태준 선생 사진도 이 ‘계성 100년사’의 사진부록에 들어있는 것이다.

100년사에 보니 교가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현재의 교가는 1927년 음악교사였던 박태준에 의해 만들어졌다. 서양의 바다 뱃노래(Sea Chantey)인 ‘The Mermaid’(인어)란 곡에 가사를 붙였다.” 즉 박태준이 이 노래에 우리말 가사를 붙여 만든 것이 현재의 계성중고교 교가인 것이다.

박태준과 ‘오빠생각’

‘계성 100년사’에는 이 학교 졸업생인 박목월의 사진도 들어있고, 작곡가 현제명이 2년간 다닌 기록도 있으며 이 학교에 다녔던 소설가 김동리가 박목월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박태준은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형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박태준의 형에 대한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초창기 대구 서양음악의 개척자는 박태준의 형인 박태원이었다. 1911년에 본교에 입학한 박태원은 대구 최초의 혼성합창단을 조직하고 지휘를 맡았으며 ‘클레멘타인’ ‘켄터키 옛집’ 등 외국곡을 번안하여 보급하였다. 박태준은 본교 5회 졸업생으로 1920년대에 ‘사우’ ‘미풍’ ‘소나기’ 등을 작곡하였으며 1925년부터 본교에 재직하면서 합창과 악대부를 지도했다. 1927년 ‘계성교가’를 작곡했으며 ‘골목길’ ‘물새 발자국’ ‘찬송가 493장’ 등 150여곡을 작곡했다.” (사진으로 본 계성 100년, 62쪽, 학교법인 계성학원, 2006년)

권 선생님은 이날 내게 달서구의 월광수변공원에 가면 박태준 흉상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즉시 차를 몰아 월광수변공원을 찾아갔다. 박태준의 흔적이 있는 세 번째 장소였다. 도원저수지(과거엔 수밭못이란 이름이었다고 한다)와 접해있어서 수변공원이라고 이름한 것 같다. 흉상은 저수지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맑은 하늘에 더운 날씨였다. 저수지 안쪽에서는 율동분수(음악분수)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음악에 맞추어 다양한 율동으로 물줄기를 뿜어내어 율동분수라고 한다. 이 공원에는 장미가 많아서 봄이면 장미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아담한 흉상의 받침돌에는 동요 ‘오빠생각’의 악보와 가사가 새겨져있다. ‘동무생각’의 악보와 가사는 오른편으로 몇 미터 떨어진 위치에 휘어지게 멋을 내어 만든 기둥모양의 철제 조형물 위에 있었다.

흉상 옆에는 다음과 같은 작곡자를 설명하고 있다.

“대구가 낳은 작곡가 박태준(1900~1986)은 우리나라 합창음악의 선구자로서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초대학장, 한국음악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오빠생각’ ‘동무생각’ ‘산길’ 등 주옥같은 노래 150 여곡을 남겼다.”

이정식(언론인·뉴스1 사장)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