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라언덕에 있는 대구 사과나무 시조의 2세 사과나무(왼쪽)와 청라언덕과 3·1운동길로 연결되는 ‘90계단’

대구 사과나무의 시조

청라언덕의 스윗즈 주택 정원 한쪽에 있는 오래된 수령의 사과나무도 눈길을 끌었다. 보호를 위해 삼각 지지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매우 허약해 보였다. 설명을 보니 이 사과나무는 수령이 70년이 되었는데 ‘대구 사과나무의 시조격 사과나무의 2세 나무’라고 한다. “1899년 동산병원 초대 병원장(존슨)이 심은 72그루 중 유일한 생육목임”이라고 되어있다. 이런 설명만 갖고는 잘 이해가 안됐는데, 그 조금 떨어진 곳에 다음과 같이 더 자세한 설명을 담은 동판이 서있다.  

“여기에 뿌리 내린 이 사과나무는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미국에서 들어온 한국 최초 서양 사과나무의 자손목으로서 동산의료원의 역사를 말할 뿐 아니라 대구를 사과의 도시로 만든 의미있는 생명체이다. 초대병원장인 존슨박사(Woodbridge O. Johnson, 한국명 장인차)가 미국 의료선교사로 동산병원에 재임하면서 미국 미조리주에 있는 사과나무를 주문하여 이곳에서 재배한 것이 대구 서양 사과나무의 효시이다”라고 쓰여있다.

대구가 사과로 유명해진 것이 110여년 전 서양 선교사가 들여온 미국산 사과 덕이었다는 설명인 것이다. 그 사과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된 것이 2000년 10월이니 그 때 70년이었으면 지금은 80년이 넘었다는 이야기다. 사과나무의 생명도 유한하므로 이 나무가 얼마나 더 살지는 알 수 없다.

사과나무의 수명은 보통 20~30년이라고 한다. 적정한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유실수로서의 한계 수명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수확을 상관하지 않는다면 더 오래 산다고 하는데, 사과나무를 수확에 관계없이 오래 둘리 없으니 80세가 넘은 이 사과나무는 아마 최고령이 아닐까 한다. 이처럼 청라언덕에는 서양 선교사들의 흔적이 많았다.

나는 이날 (2011년 8월 31일) 점심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청라언덕의 여러 장면들을 서둘러 카메라에 담은 뒤 남구에 있는 봉덕시장으로 향했다. 나의 단골 국밥집이 있는 곳이다. 방송사(CBS) 후배들과 그곳에서 점심을 함께하기로 약속을 했다. 국밥집 이름은 한양집. 돼지국밥이 전문이다. 이 식당은 내가 2003년 봄 잠시 CBS 대구본부장으로 와 있던 시절에 알게 되어 그 후 대구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들르는 단골이다. 인심 좋은 60대의 주인 내외분은 내가 갈 때마다 반가워하시고 음식도 푸짐하게 내주신다.

후배들과 국밥과 삶은 고기를 맛있게 먹고나서 내가 제안을 했다.

“청라언덕에 한번 가봅시다. 여러분들에게도 추억이 될테니까.”

후배들에게 그 장소를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대구에 살아도 그 곳을 알거나 가 본 사람은 드물었다. 선뜻 호기심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들 따라 나섰다. 이번엔 내가 해설사가 되어 ‘청라언덕’과 ‘동무생각’의 유래 등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선교사 사택에서 계산성당이 있는 언덕아래로 연결되는 유명한 ‘90계단’(1919년 3월 8일, 독립 만세 함성이 메아리 친 3·1운동길과 연결되는 곳)으로 내려가 인근 계산성당과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로 유명한 저항시인 이상화 고택, 한약재 냄새가 그득한  약령시장 등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날 오후 저녁 약속이 되어있던 마산으로 내려갔다가 이튿날인 9월 1일 오전 귀경길에 다시 청라언덕으로 갔다. 이틀새 세 번째의 방문이다. 전날 못 찍은 선교사 묘지 등을 카메라에 담고 박태준의 흔적을 찾아 계성중·고등학교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선교사 사택 바로 아래쪽의 아담한 선교사 묘역에는 10여개의 비석이 서 있었다. 입구에 ‘은혜정원’이라는 푯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이 동판에 새겨져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였다.

“우리가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여기에 고이 잠들어 있다. 지금도 이 민족의 복음화와 번영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리라.”

이정식 (언론인·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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