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맞이해 정든 고향 길을 다녀왔다. 지금은 교통이 좋아져서 자가용을 이용했지만 1980년대만 해도 시골 버스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의 만원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면 부모님들은 객지에 나갔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자식들이 언제 오나하고 차가 도착할 때 쯤 마중을 나오곤 했다.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

지금처럼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전화조차 한 마을에 행정 전화 한 대만이 이장집에 있는 형편이니 몇 시에 도착할 것이라는 사전 예고도 없었다. 그래도 마냥 기다림 속의 만남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세월이 변하다 보니 모두 옛 추억으로 남기만 하는 것 같아 석연치 않다. 초가지붕에 하얀 눈이 쌓이고 바둑이가 뛰어 다니는 풍경 속의 고향은 영화 속에서나 보는 것 같다. 지금은 시골 안쪽 길까지 아스팔트로 포장돼 자가용이 집 앞에까지 도착하지만 먼 길을 걸으면서 정답게 나누던 이야기는 옛 일이 돼 버린 지 오래다. 마을 입구 도로까지 꽉 주차돼 있는 자가용으로 시골조차도 주차난을 겪고 있음을 실감한다. 장작불로 두부를 만들던 가마솥과 가래떡을 빼던 방앗간도 자취를 감추고 슈퍼마켓에서 만두와 썰어 놓은 떡을 사다 차례를 지내는 시대이다.

예전에는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으며 정감어린 가족의 화애를 다졌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으레 이웃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나누면서 마을 공동체의 협력을 다짐하기도 했으나 요즈음은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차례만 지내면 바로 고향을 떠나는 추세여서 마을은 노인들만이 지키는 추세이다.

개구쟁이 아이들은 볏집이 우뚝우뚝 남아있는 얼은 논에서 신나게 썰매를 타며 체력관리를 했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은 손바닥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게임에만 몰두 해 동심과 꿈을 키워 줄 수 있는 전통 놀이 프로그램이 확대 보급됐으면 한다. 

반드시 문화 전통을 이어 받자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변하면 거기에 맞게 문화를 수용해 새로운 문화를 생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모습의 정체성마저 흐려진다면 뿌리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고향을 방문하면 최소한 마을 어른들을 찾아 뵙고 인사라도 드리자. 그분들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경제 주춧돌이요,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것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어르신들이 살아온 삶을 재조명하는 구술문화를 새로운 문화 사업으로 전개한다고 한다. 한 나라의 역사 못지않게 개인이 살아 온 지난날 삶의 추억도 역사의 일부분 일 수 있다. 이들 만이 지녀 온 생활문화와 경험은 산 역사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구불구불한 시골의 길도 정겹지만 도시인의 삶이 스며있는 골목길도 사라지고 있다. 더구나 요즈음 골목길은 가로등에다 곳곳에 불법 쓰레기 단속과 범죄 예방용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사실상 사람이 무서워 잘 다니지 못하는 길로서의 기능을 잃고 있다. 영국 리옹의 골목길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관광명소로써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도 농촌의 돌담길과 도심의 골목길을 부활하고자 문화특구로 지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를 정도로 급격하게 사라져 골목길도 이제 박물관의 범주에 들어가는 추세이다.

또한 지자체에서는 웰빙붐을 타고 둘레길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지나치게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시행하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요구된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무조건 개발하는 것보다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이 우리의 문화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값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연 그대로가 가장 값진 선물

우리는 지금 명절과 세시풍속 그리고 정겨운 옛 추억의 풍경을 TV 등 영상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뿐이다. 잠시 복잡한 현대 문명을 벗어나 우리의 전통 문화 체험 현장을 찾아 직접 경험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물결 속에 늘 새로움을 찾아야 하지만 우리 민족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전통문화가 많이 보존 전승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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