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골 이야기’를 쓴지 1년이 넘었다. 보름에 한번 글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나를 구속하는 줄 알았다면 글 요청이 있을 때 분명히 거절했을 것이다.

제목을 정하는 일부터 시작해 글을 쓴 후 여러 번에 걸친 교정 작업은 우둔한 나에게는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을 잘 모르는 아내는 가끔 내 글을 읽다가는 “당신은 참 글을 쉽게도 쓰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쉽게 쓸 수 있어요? 하나님은 불공평하시지 왜 당신에게만 그런 재능을 주셨을까?”하며 부러워하곤 한다.

“허허, 여보,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옆에서 보면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내 머릿속은 터질 것 같다오. 보시오 그 증거가 이 늘어난 흰머리 아니오? 그리고 하나님은 늘 공평하시다오. 당신은 당신에게 알맞은 재능을 분명히 주셨을 거요. 잘 생각해 보시오.”

지난주에는 1년 동안 쓴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글의 내용이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표현에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했던 부문도 보여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힌다. 그러나 처음 글을 쓸 때 “이런 글을 쓰겠다”는 글에 대한 나의 원칙이 매 글마다 거의 그대로 녹아 있는 것 같아 그런대로 후한 점수를 줬다.

글을 쓸 때에 나의 원칙은 이렇다. 누구나 읽었을 때 쉬워야 한다는 것이 첫째다. 그래서 어려운 용어나 단위가 높은 숫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혹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나 초등학교 학생이 읽을 때도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다 읽은 후에는 글의 내용이 바로 이해되기를 바랬다.

둘째는 되도록이면 남의 이야기나 책에서 본 간접 경험보다는 직접 경험한 것을 쓰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야기며 자질구레한 나의 일상이 글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상이 나의 삶의 일부분이기에 좀 더 소상하고 감정을 그대로 살려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셋째는 글을 다 읽은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이나 아련한 향수 또는 동감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내용의 글을 쓰고자 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가끔 독자들로부터 전화가 오기도 한다. “어쩜 우리 마음을 그리 잘 표현해요. 꼭 내 이야기 같아요.” 또는 “맞아요. 그 때는 그랬지요”하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참이나 하시는 분도 계셨다.

어쨌든 글을 쓰는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었고, 나의 주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 이었기에 늘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보청천 둑을 걸으며, 또 삼년산성의 돌조각을 살피며 여러 날 동안 글을 구상하기도 했다. 어느 때에는 글 소재가 궁해 고민 중에 있다 새벽기도 하는 중에 생각이 나서 부지런히 메모를 한 후 집에 와서 정리한 적도 있었다.

나의 분신인 20여편의 글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비록 글들이 짧고 하찮은 글이지만 거기엔 나의 삶, 꿈, 그리고 사랑이 그대로 남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그들은 늘 그렇게 숨을 쉬며 독자들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을 것이다. 영원히, 아주 영원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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