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푸른 세상--<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팀장>
늘 푸른 세상--<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팀장>
  • 충청매일
  • 승인 2011.12.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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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죽음의 순간에 맞게 될 고통과 공포는 얼마나 클까? 죽은 후 시신이 된 나의 모습은 얼마나 처참할까? 죽음에 대한 나의 오래된 생각으로 그 순간은 정말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이 지난날이었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던진 소녀

인생의 반을 훌쩍 넘기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부모, 친지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의 주검을 보며 이젠 나에게도 닥친 일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학창시절을 거치고 직장을 얻고 가족을 일구는 인생의 과정처럼, 아이들은 나의 삶을 따라 오고, 나도 부모님의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을 걸으며 많지 않은 인생을 좀 더 의미있고 아름답게 마감해야하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점점 깊어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소식이 들려오는 어수선한 세상이다. 몹쓸 유행병처럼 떠돌아다니는 듯하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사람이 얼마나 모질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먼 나라 인도에서 병들고 가난한 집안에 살고 있던 11살의 소녀 멈피 사르카르의 안타까운 자살소식을 전해 들었다. 소녀는 시력을 잃어가는 아버지와 신장병을 가진 오빠에게 장기를 주기 위해 스스로 농약을 마셨단다. 다행히 가족에게 발견돼 응급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숨지고, 가족들은 사연도 모른 채 고이 화장을 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소녀의 유서는 나중에 발견되었고, 자신의 눈과 신장을 아버지와 오빠에게 주겠다며 자살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딸의 어이없는 죽음을 나중에 알게 된 어머니는 슬픔이 병이돼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목숨을 던진 11살 소녀의 지극한 효심. 죽음으로 가족을 살리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사연은 내 가슴을 한 참이나 두드리고 울리며 지나갔다.

살아서 장기를 기증하는 방법도 있는데 어찌해 죽음부터 선택했단 말인가. 장기 기증의 올바른 지식이 모자란 사회적 책임도 어린 소녀를 죽음으로 내 몬 것 같아 안타까움이 더했다.

언젠가 장기기증운동이 한창일 때 나도 동참 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내 육체와 의식 기능이 다해 회생이 불가능한 순간에도 육체에 들이댈 칼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뜻 실천하지 못했다.

인도에서 전해진 어린 소녀의 슬픈 효심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막연했던 장기기증의 불안감을 이기고 용기를 내었다.

다시는 이런 슬픈 사연이 생기지 않기 바라는 마음으로 장기기증 가족의 일원이 되고자 회원신청을 했다. 막상 가입하고 나니 장기기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진 대신 마음이 홀가분하게 바뀌었다.

소녀의 죽음은 안타깝고 잘못된 것이지만 헛되지 않은 것 같다. 한 독지가가 소녀의 가족을 무료로 치료해 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장기기증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사르카르의 죽음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좀 더 밝아지길 소망해 본다.

‘사랑의 장기기증 가족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하트가 그려진 작은 장기기증등록증을 정식으로 받았다. 그러나 난 그들과의 약속이 아니라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장기기증, 자신과의 약속

이제부터는 내 몸도 누군가의 일부가 돼 생명에 등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 사람을 위해 몸은 더 깨끗하고 건강하게, 정신적으로도 좀 더 성숙한 삶을 살기로 다짐해본다.

저 숲이 늘 푸른 것은 숲 속에서 늘 지고 생기는 나무들이 다함께 어우러져 푸르지 않겠는가. 오늘 죽은 나무는 옆에 자라는 나무에게 거름이 되고 새 생명을 잉태하는 자양분이 된다. 우리의 생명이 마감할 때도 누군가의 삶에 밑거름이 돼 우리가 사는 세상도 저 숲처럼 늘 푸르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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