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니 여러 가지 행사가 봇물 터지듯 열린다. 행사에 따라 연말에 해야 제격인 것도 있지만, 어떤 행사는 미루고 미루다 할 수 없이 하는 행사도 있어 참석자로서 유쾌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하루에 많은 행사가 있을 때에는 겨울철 하루가 너무 짧기만 하다.

재미있는 현상은 초청받은 사람들이 거의 기관장이나 단체장이다 보니 하루에 몇 번씩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혹시 출석하지 못한 기관장이 있으면 전화해 출석을 독려(?)하는 진풍경도 가끔 볼 수 있다.

“지부장님, 바쁘시더라도 꼭 오세요. 제가 알기로는 지부장님께서 저희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하시며 문화교실 회장님과 총무님께서 직접 방문하셔서 정중히 초청을 하셨다. 평상시에도 보은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기에 전후사정 가리지 않고 우선 “예”라고 대답했다.

문화교실 전시회는 보은에 사시는 분들이 취미로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전문 선생님께 서예, 한국화, 서양화, 한지공예, 사진 등을 배우고 익힌 결실물들을 선보이는 작품전이다. 시간에 맞춰 문화원에 도착하니 많은 분들이 먼저 오셔서 작품들을 감상하기도 하고 작품을 출품한 작가들과 환담을 하고 계셨다. 특히 가족분들이 많이 참석하셔서 격려와 칭찬의 장이 되다보니 전시장은 그야말로 잔치분위기였다.

시간이 되자 참석하신 분들과 함께 테이프를 절단하고 간단한 축사와 인사말이 있은 후 작가 분들이 직접 자기작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혹 바쁜 일로 참석하지 못한 분을 대신해 지도하신 선생님께서 작품 하나하나에 세심히 설명해 주시는 것도 참 인상적이었다.

“이 분의 그림은 아마추어를 넘어섰습니다. 정말 타고난 재능이 있으신 분입니다. 비록 저와 만남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벌써 나름대로 독특한 화풍을 구사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 그림을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분이 직접 이 자리에 오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오늘도 아마 공사장에 계실 겁니다. 제 생각에 이 분이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면 지금쯤 한국에서 알아주는 대가가 됐을 것입니다”하시며 극찬을 하셨다. 비록 늦었지만 어릴 때의 꿈을 이루기 위해 힘들게 문화원 문을 두드린 분이나 그 분의 재능을 단박에 알아보고 열심히 가르친 선생님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이 돼 잠시 내 앞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작품은 올 여름에 너무나 더워 아이들과 함께 ○○제과의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먹다가 그 상표에서 힌트를 얻어 쓴 현대서예입니다. ‘설렘’이라는 글씨인데 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됐으면 합니다.” 어느 사이 총무님께서 작품 앞에 서서 부끄러운 듯 얼굴을 살짝 붉히며 조용조용 설명하고 계셨다.

“아하 난 대나무를 그린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설렘이란 글씨였구나!”하며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움에 작가보다도 오히려 관람객인 내 가슴이 더 벅차오름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대가의 작품이 아니면 어떻고, 고가의 작품이 아니면 어떤가. 내가 봐서 좋으면 그만이고, 내가 그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만이지.” 지금도 내 가슴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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