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어느날, 평소 필자가 후원을 해오고 있는 한 보육원의 원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요지는 보육원 원생이었던 한 여자아이가 장성해 이제 결혼을 하게 됐으니 주례를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다른 나라로 시집 간 보육원생

필자는 문득 그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보육원에서 성장해 아무도 알려주는 이 없이 혼자서 결혼을 결정하고 또 예식을 준비해야 할 어려움을 생각하며 그래도 내가 미약하나마 도움이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흔쾌히 허락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 아이의 신랑될 사람이 외국인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주례사를 영어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과 함께 어찌해야 할 지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왕 하기로 약속한 이상, 멋진 주례를 서 줘야 겠다는 마음에 한 줄 두 줄 주례사를 써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맘처럼 잘 되지가 않는다. 게다가 영작을 하려다 보니 짧은 영어실력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속앓이를 하고 가까스로 주례사를 완성한 뒤 결국 영작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고는 결혼식 전날 더듬더듬하며 열심히 읽어보았다. 그러나 도통 영어 발음이 잘 안된다. 하는 수 없이 모르는 단어 밑에다 한글로 토를 달아서 읽어보았더니 한결 수월해 졌다. 급기야는 영문 주례사 밑에 조그맣게 한글로 토를 전부 달아 놓고 열심히 밤새 연습을 했다.

드디어 결혼식 날이 됐다. 필자는 신랑신부에게 살아가면서 꼭 지켜야 할 당부 사항과 함께 우리말로 먼저 주례사를 마친 후 다시 신랑을 위해 더듬더듬 영어 주례사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육원생 식구들과 후원자들, 신랑신부를 축하해주러 온 하객들이 모두 바라보는 가운데 손바닥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을 느끼며 주례사를 읽어 내려갔다. 신랑신부가 서로 태어난 환경이 다르고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두 사람이 이제 새로운 인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으니 앞으로 더욱 사랑하며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잘 살아달라는 부탁이었다. 필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은 연일 “땡큐, 땡큐”하며 인사하는 걸 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추석명절이 다가올 때쯤 어느 날, 태국에 살고 있는 그 아이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다. 멀리 타 국에서 외롭게 지내고 있을 그 아이에게 전화해 줄 사람도 마땅히 없는데 필자가 먼저 연락을 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그 날의 결혼식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나에게 먼저 안부를 물어봐 주는 그 아이가 너무나도 기특하고 고마웠다. 또 남편과 함께 골프트레이너로 활동하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한결 놓이며 그동안 보육원에서 외롭게 자랐을 그 아이가 멀리 타 국에서 더 많은 외로움을 타지는 않는지 걱정도 되고, 마치 시집보낸 딸의 전화를 받는 것처럼 가슴 한 켠이 찡해졌다.

10여년 전 한 후원자의 도움으로 보육원 운동장 한 쪽에 작은 연습장을 만들어 골프를 시작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세미프로로 활동하며, 또 골프를 통해 평생 반려자까지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나 흐뭇하다. 그리고 앞으로 부디 훌륭한 골프 선수의 꿈을 꼭 이뤄 많은 보육원생 아이들에게도 큰 희망이 돼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골프로 반려자까지 만난 인연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올 연말에도 우리 보육원생 아이들, 또 후원자들과 함께 한 해를 기쁘고 즐겁게 보낼 행사를 준비하면서, 비록 멀리 타 국에 있어 연말을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지난 여름 내 특별한 주례의 주인공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며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보낼 수 있기를 멀리서나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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