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만에 거실에 들어서니 향긋한 귤 냄새가 가득하다. 아버지 냄새, 형님 냄새다. 두 분은 담배를 많이 피우셨는데 돌아가시니 담배 냄새가 모두 귤 냄새로 변했는가 보다. 가만히 서서 한참 동안 그 냄새를 음미해본다.

귤나무가 다시 내게 돌아 온 것은 올 5월이다. 형님이 돌아가시자 형수님께서는 전원생활을 청산하시고 청주로 이사하셨다.

이사 전에 형님이 키우시던 화분들을 조카들과 이웃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셨다.

그러나 큰 귤나무만은 한 쪽에 두셨다가 이사하던 날 나를 부르시더니 “삼촌, 이 귤나무 이젠 삼촌이 맡아야 할 것 같네요. 아버지와 형님이 그리도 아끼던 나문데…” 하시며 아쉬운 듯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셨다.

귤나무의 수령은 아마 50년 쯤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어느 해 봄에 아버지께서 귤나무를 사 오신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꽃나무를 좋아하셔서 집에는 많은 화분과 꽃으로 가득 찼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꽃집’이라고 부르며 부러워했지만, 우리 가족들은 그 꽃나무 때문에 아버지께 꽤나 시달렸다. 물을 제때 안줘 꽃나무가 시든다든가, 또는 놀다가 선인장 가지 하나라도 부러뜨리는 날은 아버지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런 아버지께서도 중풍으로 오래 고생하시자 만사가 귀찮으셨는지, 많은 화분도 시나브로 없어졌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귤나무만은 애지중지하셨다.

그러던 중 나의 직장 이동으로 부득이 아버지를 형님 댁으로 모시게 됐고귤나무도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서 형님 댁으로 갔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이번엔 형님께서 귤나무를 가꾸셨는데, 아버지보다 더 잘 가꾸셨다.

봄에 화분갈이를 하실 때에는 시골에서 구해온 푹 썩은 두엄을 잔뜩 넣어주시기도 하고, 가지치기도 온 정성을 다하여 해주시니 귤나무는 늘 싱싱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무거운 귤나무를 방안으로 옮겨야 하는데 형님은 늘 혼자서 그 일을 하셨다.

돌아가시던 해에는 전화를 하셔서 “동생, 벌써 날이 쌀쌀해. 다른 일은 쉬엄쉬엄 할 수 있는데 귤나무 옮기는 일은 이젠 내 힘으로는…” 하시며 한 숨을 쉬셨다. “형님, 일요일에 조카들하고 제가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하며 안심을 시켜 드리기도 했다.

한 여름을 옥상에서 보낸 귤나무를 보니 상태가 형님 댁보다 못했다. 옥상으로 옮기다가 가지 몇 개가 부러졌고, 제때 물을 주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귤도 많이 달리지 못했다.

그런 귤나무를 보니 괜스레 아버지와 형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는 아버지와 형님처럼 부지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요, 또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부족한 것에 대한 나의 죄책감일 것이다. 

오늘도 난 귤나무를 보며 아버지와 형님의 향기를 맡는다.

그리고 두 분의 이야기를 살며시 엿듣는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버지 뒷모습을 보고 배웠듯이 막내도 잘 배웠을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 손자들도 지금 막내를 보면서 잘 배우고 있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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