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마움 속에서 살면서도 그것을 잊고 지낼 때가 많은 것 같다. 그 중에 하나가 조국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귀한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신 국가유공자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도 또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민주주의도 그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들의 고마움과 뜻을 살리기 위해 각종 기념관도 세우고, 행사도 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 때뿐, 너무나 쉽게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북한의 연평도 폭침’이 일어난 지 1주년이 됐다.

우리는 그 사건이후 대한민국이 지금 휴전상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신 국가유공자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

작년 연말부터 어려운 보훈가족들을 위하여 직원들의 성금으로 조그마한 도움을 주게 됐다. 올해는 김장김치를 준비해 홀로계신 몇 분의 보훈가족에게 나눠 주는 행사도 했다.

‘감나무 집 할머니’는 바로 그 때 만난 보훈가족이시다. 할아버지는 지금부터 60년 전 6·25한국전쟁때 속리산에 나타나는 공비를 토벌하기 위해 나섰다가 적의 총탄에 숨을 거두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당시 3살 된 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살았는데 그만 10여 년 전에 그 아들마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니 참 어렵고 힘든 삶을 사신 할머니시다.

할머니께서는 고령으로 몸이 아프셔서 외출도 쉽지 않고, 또 정든 이웃들도 거의 마을을 떠나다 보니 이야기 상대는 오직 보훈 도우미뿐이라며 도우미 아주머니의 손을 꼭 잡으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음 일정이 있어 나오려니 좀 더 있다 갔으면 하는 할머니의 눈빛이 계속해서 나의 바지 단을 잡아당겼다.

밖에 나오니 앞마당에는 커다란 감나무와 고욤나무가 이 집의 세월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할머니 감나무 때문에 앞이 좀 답답하시겠네요?”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고, 그 나무 좀 누가 베어 줬으면 좋은데, 모두들 못한다고 하니…” 하시며 한숨을 쉬셨다.

“내가 괜한 이야기를 했구나.” 생각하며 엉거주춤 서 있는데 이번에는 보훈 도우미까지 거드셨다.

“지부장님, 할머니께서 몇 년 전부터 감나무를 베어 달라고 하시는데 제 힘으로는 좀 힘드네요. 아무래도 지부장님께서 도움을 주셨으면… ” “이것 참, 어째든 할머니 제가 좀 연구 좀 해 볼께요”하고는 할머니 집을 나섰지만 뒷머리는 점점 무거워졌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농협 앞에서 전기공사하는 사다리차를 보게 됐다. “아하! 그래 한전에 부탁하면 되겠구나”해 바로 보은 한전 지점장에게 전화하니 흔쾌히 승낙하신다.

다음날 지점장이 이끄는 한전 사회봉사단원들과 함께 할머니 집을 다시 방문했다. 그리고 2시간 동안 힘을 합해큰 감나무는 물론 그 옆에 있는 고욤나무까지 모두 베어 버렸다. 그 때 할머니의 환한 모습은 서산으로 막 넘어가는 붉은 해보다도 더 밝으셨다.

“하늘나라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기뻐하고 계신 것 보고 계시죠? 저희들도 함께 봉사하며 할머니의 사랑과 기쁨을 듬뿍 받았습니다. 아마, 이런 것을 ‘같이의 가치’라고 하나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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