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도가니’ 포스터

영화 ‘도가니’의 클라이맥스는 무엇일까? 필자는 검사의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검사는 정의롭게 보였다.

변호사는 처음부터 브로커처럼 나왔기 때문에 기대 안했다. 판사는 전관예우에서 자유롭지 못해 보였다. 그런데 검사는 이들과는 좀 달라보였다. 그래서 기대를 했다. 영화속의 이야기는 검사도 결국 그들과 한통속이라는 것이다.

로펌에 스카우트 되기로 한 댓가로 중요한 자료를 증거로 제시하지 않아서 솜방망이 판결이 나오도록 했다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검사, 너마저?…”

이렇게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공판정에서 주인공과 청각 장애인들의 절규는 관람객들에게 바로 그 소리로 들렸다.

지난 10월 6일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 뉴스의 초점이 그쪽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서울 시장 선거관련 뉴스를 뺀 국내 뉴스의 가장 주요한 화두는 영화 ‘도가니’였다. TV가 며칠 연속해 주요 뉴스로 다루고, 신문은 톱기사를 장식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외면해 온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 기득권자들의 비열한 이면을 리얼하게 표현했기 때문일 것으로 본다. 이 영화에는 사회적 소외층과 서민들의 폐부를 찌르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영화 ‘도가니’는 2005년 광주 인화학교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청각장애 아동들에 대한 교장과 교사들의 성적 폭력 사건을 다룬 것이다.

공지영의 동명(同名) 소설을 영화화했다. 작가가 실제사건을 소설화 한 것이긴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므로 소설이나 영화속의 묘사와 실제 사실이 그대로 일치하는지는 모르겠다.

검사가 스카우트 약속의 댓가로 양심을 팔아먹는 그런 야바위 짓을 했는지, 변호사가 실제 그러했는지, 판사가 전관예우의 영향을 받았는지 증거를 찾을 길은 없다.

그러나 판결 결과로서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할 수 있고, 그러한 일이 사실일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작가 공지영이 이 사건을 여론의 법정에 세우고자 소설화했다는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그 결과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오늘날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니 잘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졌음을 말해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물론 ‘잘 만든 영화’라는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소설과 영화 덕에 뒤늦게라도 드러나는 사건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드러나지 않고 뭍혀버리는 사건은 또 얼마나 많을까?

돈의 횡포

필자는 현역시절, 정당한 기사를 쓰고도 상대방으로부터 엄청난 금액의 소송을 당하자 기자 스스로 오보를 했다며 발을 빼는 모습을 보았다. 그 회사가 그를 보호해 줄 능력이 없어 보였다. 기자도 엄청난 금액의 민사 소송에 기가 죽었다. 가진자의 횡포에 가난한 정의감은 설 곳이 없었다. 돈의 횡포라고 느꼈다. 돈으로 요술을 부리는 그런 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 요술에 동원되는 것이 일부 잘 나간다는 로펌이요, 변호사들이다.

1994년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오제이 심슨 사건은 너무나 유명하다. 흑인인 유명 미식축구선수 심슨이 그의 백인 전부인과 그녀의 애인을 잔인하게 살해했는데, 유능한 변호사들이 그를 무죄로 만들었다. 그 값비싼 변호사들을 언론들은 드림팀이라고 했다. 급기야 살인사건을 인종주의 사건으로 변질시키는데 성공했다.

사건 당일 차를 몰고 달아나는 심슨을 경찰차들이 추적하고 이 장면을 TV들이 헬기를 동원해 전국에 생중계했다.

필자도 당시 워싱턴에서 그 장면을 TV를 통해 보았다.

이날 심슨을 체포한 백인경찰이 “이 검둥이XX, 잘 걸렸어”라고 내뱉었다. 변호사들은 이런 말들을 가지고 재판에서 ‘인종 차별적인 살인죄 조작’이란 논리를 만들어 냈다. 12명의 배심원 가운데 9명이 흑인, 1명은 히스패닉계, 백인은 2명이었다. 결국 심슨은 다음해 10월 배심원단 전원일치의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미국은 법치주의가 발달한 국가로 보이지만, 변호사의 장난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걸 모방하는 변호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도가니가 보여주는 장면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변호사는 피의자를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어떤 기교도 용납받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서구식 변호사관인지는 모르지만 법 기술자의 현란한 기교는 결국 가진자 만을 보호할 뿐 때때로 약자의 피해를 가중시킨다. 검사도 변호사도 판사도 정의감이 그 가슴에서 사라지면 국민에게 해로운 존재가 될 뿐이다. 영화 ‘도가니’를 보고 관객이 더 분노하는 것은 교장이나 교사의 비행보다도 최후의 보루로 믿었던 (영화속의) 법조인들에게서 어떠한 정의감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 아닐까.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돈이 있으면 죄가 있어도 무죄, 돈이 없으면 죄가 없어도 유죄’

1988년 10월 서울에서 발생했던 지강헌(당시 34세) 등 영등포 교도소 미결수 12명의 집단 탈주때 인질극을 벌이던 지강헌이 경찰에 사살되기 전에 외쳤다는 말이다. 당시 유행했던 말이지만 영화 ‘도가니’를 보면서도 이 말을 떠올린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정식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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