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회의를 일찍 끝내고는 검정색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옷장에서 밀짚모자까지 꺼내어 쓰고 나니 거울 속에는 영락없는 초로의 촌부가 나를 보고 있다.

지난 5월 초에 다문화가정 내 이주여성과 함께 고구마를 심었으니 벌써 6개월이 됐나보다. 그 동안 잦은 비로 혹시 폐농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돼 출장길에 몇 번 들려 보기도 했었다. 다행히 가을로 접어들면서 햇볕이 좋아 고구마 농사가 잘됐다는 이야기와 함께 고구마 캘 날짜까지 들으니 그 동안의 걱정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밭에 도착하니 벌써 20여명의 여성농업인과 이주여성들이 고구마 잎을 제거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들은 2009년 ‘여성농업인과 이주여성 간 1대 1 맞춤형 영농교육’으로 인연을 맺은 분들이다.

교육이 끝난 후에도 자주 만나 한국 생활과 영농에 대해 가르쳐 주고 또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정엄마와 딸의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올해 초에 이분들이 모여 상의한 결과 그 동안 배운 지식을 이용해 직접 농사를 지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농협의 도움으로 500여평의 밭을 임대해 고구마 농사를 짓게 된 것이다.

다행히 어렵고 힘든 작업을 위해 이주여성 남편 몇 분이 도우미로 나오셨으며, 농업기술센터에서도 고구마 캐는 농기계를 지원 해주셔서 모두들 수확의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

길게 늘어선 고구마 고랑을 보니 작년 이맘때가 생각이 났다. 올 초 돌아가신 둘째 형님께서는 인근 밭을 빌려 고구마를 심어 놓으시고는 하루 종일 고구마 밭에서 사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찍 전화를 하셨다 “동생, 숨이 차고 힘이 부쳐서 고구마를 캘 수 없어. 와서 좀 도와줘.”

조카들과 함께 휴일을 이용해 100여 평 넘는 고구마를 수확하려 하니 당초 생각보다 무척 힘이 들었다.

무엇보다 땅이 딱딱하니 호미가 들어가질 않아 힘이 들었고, 둘째는 캐는 방법이 서툴다 보니 고구마는 잘리고 흠집이 나 상품성은 물론 저장성도 떨어져 겨우내 두고 먹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형님! 조금만 하시지 웬 욕심이 많으셔서 이렇게 많이 심으셨어요. 내년에는 조금만 심으셔요. 이러다 온 집안이 병날 것 같아요.” “그래, 내가 왜 그리 욕심을 냈는지, 내년도에는 2줄만 심어야겠어. 나도 이제는 힘이 들고…”

고구마 밭 한쪽으로 쪼그려 앉아서는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시던 형님이 오늘도 나오셔서 나를 보고 계시다는 착각에 한 동안 일어나 형님을 찾곤 했다.

“야! 세월 참 좋네. 경운기에 쟁기 달아 고구마를 캐니 우리는 줍기만 하면 되는 것 아냐.” 언제 오셨는지 보은농협 조합장께서는 고구마를 상자에 부지런히 담고 계셨다.

“엄마! 이 고구마 좀 보세요. 꼭 새 모양 이네요”하며 베트남 댁이 친정엄마로 삼은 회장님 앞에서 고구마를 보이며 어리광을 부린다.

“그래, 정말 새 모양이네. 똑 같은 것을 하나 더 찾아서 집에 가지고 가면 좋겠는데. 하나는 신랑 새, 하나는 새댁 새, 그러고 보니 고구마 원앙새가 되겠네. 호호호.”

두 모녀의 웃음소리는 어느새 사랑의 원앙새가 돼 푸른 하늘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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