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잠잠하던 호기심이 발동했다. 저녁 때마다 운동 길로 택했던 보청천 북쪽 길 대신 이번엔 남쪽 길을 택해걸어 보았다.

길의 방향만 바꿔 봤을 뿐인데 분위기가 분명 달랐다. 우선 근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보청천 물소리가 좋았고, 둘째는 시장가의 다양한 조명과 함께 그 빛이 보청천에 반사되는 야경이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언젠가 보았던 홍콩의 야경이 웅장했다면 보청천의 야경은 자연미와 함께 왠지 모를 애수가 있다고 할까?

그 길은 보청천의 서쪽 지류를 건너기 위한 조그마한 구름다리를 건너고 약간의 경사 길을 오르면 바로 둑방길로 이어진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제법 몸집을 갖춘 벚나무들이 양쪽에 도열해 일제히 환영의 손을 흔든다. ‘쉬이익’하는 함성과 함께….

잘 포장 된 자전거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다보니 어느 사이 주위는 어둠이 서서히 깔린다. 이따금 운동차 나온 아낙들의 소곤거림이 지나가고, 저 멀리 자전거의 환한 불빛 또한 나타났다, 한 줄기 바람만 남기고 쏜살같이 사라지면 또 다른 어둠과 정적만이 그 뒤를 따른다. 강 건너 저 멀리 보이는 외딴집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안노인의 희미한 그림자를 본다.

이유도 모르는 웃음소리만 가득한 TV를 보면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수저를 무의식적으로 드시는 할머니가 연상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어둠과 정적이 만들어 주는 자연의 영화관 속에서 잠시 상념의 나래를 펴본다.

집을 출발한지 거의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이젠 더 이상 지나가는 사람도 불빛도 없다. “내가 자연에 취해 너무 왔나”하며 뒤돌아 가려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불빛의 향연이 시작됐다. 불빛을 자세히 보다가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아! 반딧불이.” 그들은 분명 반딧불이였다. 난 그들과의 만남이 너무나 오래 됐기에 ‘혹시’ 하면서 잠시 멈춰 섰다. 반딧불이 역시 그 동안의 그리움 때문인지 내 주변을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마침 길가에 쉼터가 있어 잠시 앉아서 그들을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처음엔 셀 수 있는 작은 숫자인 줄 알았는데 유심히 보니 풀잎 구석에 앉아 있는 놈들도 많이 있었다. 그 중엔 아직 어려서인지 불빛이 밝지 않은 애벌레들도 풀잎 사이로 여럿이 보였다. 난 그렇게 앉아서 그들과 오랜만에 해후를 했다.

집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 일어나니 아주 밝은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내 머리 위를 날아간다. “아저씨, 아저씨, 저 좀 보세요. 참 밝지요?” “야, 무슨 소리야. 밝기로 하면 당연히 나지”하며 어디서 날아 왔는지 또 한 마리의 반딧불이가 내 앞을 ‘휘이익’하니 지나가며 외쳤다.

“그래, 그래, 싸우지 마라. 너희들 정말 밝구나! 그래서 옛날에는 너희들을 모아서 책을 읽었다고 하지 않니?”하며 맞장구를 쳐주다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반딧불이에게는 큰 관심거리며 자랑거리인 그들의 밝기가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자기들 사이엔 밝음 정도가 자랑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놈이 그놈이다. 하물며 대낮에야…  아마 우리도 반딧불이와 같지 않을까? “남보다 조금 더 배운 것, 조금 더 부자인 것, 그리고 조금 더 높아진 것” 그게 무슨 대수인가? 하나님이 보시기엔 그게 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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