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인 지금도 가끔 수학문제를 푸는 꿈을 꾸다 가위에 눌려 잠을 깨곤 한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수학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상은 다르지만 그와 비슷한 스트레스가 요사이 나의 잠을 설치게 한다. 그 놈은 바로 사무실 성적표(실적)다. 일정한 기간 동안 전 직원이 노력 했지만 결과가 나쁘게 나타날 때 직원들이 느끼는 집단적 스트레스는 물론 사무소장으로서 느끼는 개인적인 중압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작년 하반기부터 하향 길을 걷던 우리 군지부의 실적은 급기야 올 상반기에는 하위권으로 곤두박질 쳤다. 상반기 실적 발표가 있던 날 직원들은 성적표를 기다리는 학생들과 같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렸고, 그 결과를 보는 순간 모두들 실망감에 허탈해했다.

나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괜스레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또 멍하니 앉아 있다가 퇴근시간이 되어 직원들 모르게 슬며시 나와 퇴근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 중 “나도 나지만 직원들의 실망감이 얼마나 클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아침 회의 시간에 직원들에게 위로의 말로 회의를 시작했다.

“보은의 경제적인 여건을 탓하기 보다는 사무소장인 저의 지도력과 추진력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제 탓이니, 하루 빨리 실적은 잊어버리고 다시 힘을 모아서 하반기 실적 향상을 위해 노력합시다.”

아침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 결재를 하고 있으려니 노크 소리가 났다. 1층에서 은행 업무를 총괄하는 지점장이 주춤거리다 들어왔다. “지부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모든 것은 제 탓입니다”하며 정중히 사과를 했다. “아니오, 그런 말 하지 마시오”하며 일어나 지점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 줬다

점심시간에는 팀장들이 들어 와선 직원들의 모범이 되지 못했다며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기들 탓이라고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업무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1층 객장을 돌아보고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영업대에서 마감을 하던 여직원 한분이 살며시 일어났다. “지부장님, 어째든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선배인 제가 후배들을 잘 이끌었어야 하는데…”하며 눈물까지 글썽인다.

“아니오, 자꾸들 그런 말들 하지 마시오.”하며 손사래를 치다가 갑자기 사무실이 환하게 밝아 오는 것을 느꼈다. 비록 사무실 실적은 하위였지만 모든 직원들의 모습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감싸주는 사랑의 마음이 온 사무실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나는 이런 분들과 함께 근무하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퇴근 길 아파트에서 우연히 바라본 푸른 들녘은 방금 샤워를 하고 온 여인의 얼굴처럼 물기가 함초롬하였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삼년산성이나 또 저 멀리 보이는 속리산에도 구름이 허리에 걸쳐있어 마치 보은이 무릉도원인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아하! 그래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구나, 바로 이곳이 천국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조금 전까지 그리도 무겁던 발걸음이 갑자기 구름 위를 ‘훨훨’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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