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말부터 시작된 장마가 7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계속 되는 장맛비에 재산손실은 물론 인명피해까지도 많았다니 마음이 아프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며 위대하다고 자랑해보았자, 자연 앞에서는 언제나 무기력한 존재인가 보다.  

큰 수해를 여러 번 당했던 보은군은 치수사업만큼은 전국 어느 군과 비교해도 아마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태풍 ‘메아리’가 보은에 300mm 이상의 비를 폭포수처럼 뿌리던 날도 보청천에 나가보니 그 많은 물들이 잘 정비된 물길을 따라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흠이라면 생활쓰레기며 나뭇가지들이 너무 많이 떠내려가는 모습이랄까...

잠깐 비가 그치기에 관내를 차를 타고 돌아보니, 논둑이 약간 터진 곳이나 비탈진 밭에 농작물이 쓰러진 것을 제외하고는 큰 피해가 없었다. 내북면을 한 바퀴 돌고는 돌아오려다 함께 농협 생활을 하시다 퇴직을 하시고 지금은 포도농사를 하시는 선배님이 생각나 포도밭으로 차를 돌렸다.

선배님은 IMF사태 때 구조조정이라는 어려운 일을 묵묵히 수행하시고는 후배들을 위하여 자진해서 명퇴를 하신 분이다. 선배님의 퇴임이 너무 서운하여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 음식점에서 퇴임 연을 차려드리자 그 자리에서 담담하게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떤 직원들은 승진이 임박한데 왜 명퇴를 하느냐고 하시지만, 젊은 후배들이 모두 나가는데 나이 많은 내가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것도 좋은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부터 퇴직 후 하려고 생각했던 일을 조금 앞당겨서 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들뜨고 설레기까지 합니다. 저는 나가면 농부로서 제2의 삶을 개척할 것입니다.”

포도밭에 도착하니 선배님은 아주머니 4명과 함께 포도에 봉지를 씌우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마침 사모님께서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나와 계시다 나를 보곤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여보, 빨리 나와 보세요” 사모님께서 포도밭을 향해 소리를 치자 잠시 후 모자를 벗어 들고는 밖으로 나오신 선배님의 얼굴은 분명 아프리카 사람이다. 까만 얼굴에 반짝이는 눈, 그리고 웃을 때 나타나는 하얀 이.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보아야 하는데, 이제야 시간을 내어…”

“무슨 소리야,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오는 것 만해도 고맙지”하시며 평상에 앉으셨다.

“이젠 농사도 그만 두어야 하겠어. 힘든 것은 둘째고 일 할 사람이 없어. 작년까지만 해도 일 잘하는 일꾼을 찾아 다녔는데. 올해는 아예 일 할 사람이 없어, 일 할 수만 있으면 무조건 모셔 와야 되니…. 보다시피 아주머니 4명을 겨우 구해 일하고 있는데, 이런 속도라면 봉지를 씌우는데 앞으로 열흘도 더 걸릴 것 같아. 포도 작황도 겨울 냉해로 30%정도 감수가 될 것 같고, 달린 것은 상품성이 떨어지지. 참 힘들어”하시며 안하시던 푸념을 다하신다.

“선배님, 올해는 기후가 나빠 과일 생산은 저조할 것으로 예상하나, 대신 가격이 올라 수입은 괜찮을 겁니다”하며 위로하였다.

“아이고 모르는 소리하고 있네, 포도 가격이 오르면 상인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아마, 칠레산 포도가 바로 수입 될걸. 이젠 소비자들의 입맛도 어느 정도 칠레산 포도에 길드여 졌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는데” 하시며 또 한숨을 쉰다.

하기야 선배님 말씀이 틀린 말씀은 아니다. 왜냐하면 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나쁜 병에 걸린다며 촛불시위를 한 것이 어제 같은데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급변하지 않았는가! 한우 가격이 오르자 이젠 너도나도 가격이 싼 수입고기를 구매하다보니 수입량이 급격이 증가하고 있는 반면, 한우 가격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어 한우 농가들의 시름이 크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입맛이며 마음은 참 간사하다. 농심과 같이 늘 한결 같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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