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그치면 바야흐로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된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자연과 동화돼 삶의 마디를 찾으며 자신을 되돌아 보고 창조적 재충전의 기회를 주는 여름철 휴가는 현대 사회의 청량제이다. 

오늘날은 휴가라 하면 바닷가며 계곡을 찾지만 옛 사람들은 시냇물이 흐르고 솔바람이 부는 그늘에 정자를 짓고 이곳에서 탁족(濯足)을 하며 불볕더위를 식혔다. 피서(避暑)는 더위를 피해 선선한 곳을 찾는 것이지만 옛 사람들은 더위 속에 숨는다는 의미의 은서(隱暑)라 했다. 고도성장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져 교통수단을 이용해 서늘한 곳으로 가는 오늘날의 바캉스(Vacance)가 아닌 은자(隱者)처럼 숨어 지내며 세상을 관조(觀照)하고 심심을 수양하는 철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통풍 잘 되는 삼베·모시 옷 애용

유원지의 행락 무질서와 바가지 요금이 판쳐 스트레스를 받는 휴가문화에 비해 옛 사람들은 찜통더위 때도 체온을 내려주는 왕골자리나 대자리가 깔린 대청나루에 죽부인을 안고 참숯 베개를 베고 달콤한 낮잠을 즐긴 후 보양식을 먹으며 지내는 낭만적인 호사를 누렸다.  

여름철은 여성들이 한껏 맵시를 내는 계절이다. 조금라도 더위를 막고자 민소매, 미니스커트, 탱트톱 차림에 맨발로 신는 샌달, 요즈음은 노출이 더 심해져 하의실종 패션이 대세를 이루고 있어 50년 전과는 다른 격세지감을 느낀다. 1946년에 개발된 비키니는 여가 생활의 발달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여성들에게 알려졌다.

유교의 문화가 엄격한 조선시대에는 남녀 모두 아무리 덥다해도 속살을 보이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옛 사람들은 땀 흡수와 통풍이 잘 되는 삼베나 감촉이 깔깔하고 통풍이 좋은 모시와 같은 시원한 옷감을 이용해 옷을 지어 입었다.

또한 옷 안에 등나무 줄기를 가늘게 쪼개 엮어 소매 없는 윗옷인 등등거리와, 살갗에 천이 닿는 끈적거림을 방지하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팔뚝에 등토시를 하고 겉옷을 입으면 무더위를 날리는 데는 따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노동을 하는 평민들은 어쩔 수 없이 신체의 일부분을 노출을 했다. 가랑이가 무릎까지만 내려온 오늘날의 반바지라 할 수 있는 홉겹바지인 잠방이와 등만 덮을 만하게 걸쳐 입는 등거리를 입고 여름을 지냈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었던 옛 사람들에게 더위를 식혀 줄 수 있는 도구로 필수품처럼 가지고 다닌 것은 부채였다. 집안에서는 반원처럼 생긴 둥근 판에 자루를 달아 둥글게 만든 부채인 단선을, 이동 중에는 주머니에도 넣을 수 있는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선을 휴대하고 다녀 냉방병과 같은 질환이 없었다. 잠을 잘 때에는 사람의 키만큼 긴 대나무로 만든 원통형의 죽부인을 주로 남자들이 이용했다.   

아이스크림과 빙과류를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오늘날과 달리 옛날에는 자연을 이용한 냉장법을 터득했다.

수박은 차가운 우물 속에 깊숙이 넣었다 꺼내 먹고 쉽게 쉬어버리는 음식은 흐르는 물속에 담가 변질을 막았다. 빙수 대신에 꿀물이나 오미자 물에 수박, 복숭아 등 여름철 과일을 넣거나, 진달래 꽃잎을 넣어 만든 화채(花菜)를 시원한 사기그릇에 담아 차게 마시며 잠시나마 더위를 식히곤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쓴 ‘다산시문집’에 보면 △깨끗한 대자리에서 바둑두기 △소나무 단(壇)에서 활쏘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뛰기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 △동쪽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오는 날 시 짓기 △달 밝은 밤 발 씻기라는 8가지 피서법(消暑八事)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은 계곡마다 피서철이면 온갖 쓰레기로 몸살을 겪는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옛날에도 남산과 북한산 계곡은 피서지였으나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시를 짓거나 책을 읽는(披書) 로맨스적인 피서를 했다.

우물·흐르는 물 이용한 냉장법

신라시대 때부터 유래된 유두날(음력 6월 15일)에는 맑은 개울을 찾아가서 목욕을 하는데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東流水頭沐浴) 난 후 유두면(流頭麵:밀국수), 수단(水團:찹쌀로 만든 새알을 차가운 꿀물에 타먹는 것), 건단(乾團:수단을 얼음물에 타지 않고 그냥 먹는 것),연병(連餠:밀가루 반죽을 넓게 밀어 기름에 튀기거나 깨와 콩을 묻혀 꿀을 바른 음식) 등의 유두 음식을 먹으며 더위에 대비했다.  

고려 때의 문인 이규보가 말한 고열(苦熱)인 괴로운 무더위가 시작되면 냉방가동으로 전력 소비가 급증한다.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면서 까지 바캉스를 떠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올 여름에는 알찬 휴가계획과 더불어 우리 선조들이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해 인격 수양을 하며 여름을 났던 지혜를 마음속에 되새겨 자연체험과 선진 질서의식이 함양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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