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향년 98세로 타계한 중국 북경대학교의 원로학자 지셴린(季羨林). 그는 중국인들로부터 ‘나라의 스승’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13억 중국인들과 소통을 하게 된 수단의 하나는 일생 동안 써 온 그의 에세이였다.

그가 쓴 글 중의 글, 사람들에게 울림이 컸던 감동적인 작품만 엄선해 ‘다 지나 간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됐다고 한다. 짧은 문구 속에 담긴 사색은 책 속에는 잘 담겨있겠지만 제목 자체만으로도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시련에는 의연히 대처하고, 상황이 좋을 때는 미리 경계할 수 있는 심리적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상 초유 구제역 피해 한동안 시름

경북발(發) 구제역이 전국을 강타하며 충북도에도 사상 초유의 피해가 발생했다. 11월 말부터 경북지역과 통하는 길의 차단방역을 시작으로,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 연결도로로 확대할 때까지 형편은 좀 나았다. 그러나 12월 말 충북도내에서도 발생이 확인되면서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온 몸에 맥이 빠져 낙담하던 날, ‘다 지나간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격려해 주시던 지인의 한 마디에 힘을 얻어, 추위보다 더 독한 방역전쟁을 다시 벌이던 기억이 생각난다.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가장 늦게 시작해서 가장 빨리 종식한 결과는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지역과 달리 구제역의 확산 속도에 맞추어 예방접종을 발 빠르게 결정하고 이에 협조해 준 축산농가의 결단력이 빛났다. 방역기간 중 공무원들과 더불어 군 경, 시민단체 자원봉사자와 각계각층의 희생 어린 방역 동참과 교통 불편을 이해하고 협력해 준 158만 충북도민의 성숙된 시민의식은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였다.

이제 구제역은 진정됐지만 수습을 위한 파장의 여운은 생각보다 훨씬 길고 험하다. 처음의 시련은 축산 농가의 살처분 피해와 주변 소상공인의 간접적 피해, 지역을 찾아 주는 관광객 감소로 이어지는 일부 지역의 경기침체라고 한다면, 두 번째 시련은 대부분 사람들이 겪는 간접적이고도 전체적 피해였다.

방역비용과 피해보상이라는 국민의 혈세 손실은 차치하고 국민 축산물이라고 불리던 삼겹살과 더불어 관련 보완재의 가격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한우는 산지 가격이 하락해 생산과 소비 불균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매몰지 환경문제 등은 새로운 걱정거리로 우리 모두는 공동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간접피해들을 바라보며 방역관계관의 한 사람으로서 축산업이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게 된다. 그간의 잘 잘못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되돌아보고, 경험으로 얻은 아픔들은 소중한 자산으로 승화시켜야 할 때로 보인다.

축산업이 국민들에게 단순히 양질의 단백질 공급기능만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단일 질병으로 국가 경제에 이 만한 영향력이 있음을 볼 때, 축산업은 더 이상 일정한 영역의 소극적인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큰 틀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농촌경제의 실질적인 소득이라던 자부심도 겸손한 생각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축산업은 이제부터 사회에 어떻게 공헌해야하고 어떻게 환원해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 소는 잃었으되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고 마음도 심기일전해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었으면 한다. 농축산물은 공산품과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해 목장은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깨끗이 조성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건강한 가축을 길러 내는 것이 답이 아니겠나 싶다.

외양간 잘 고치는 전화위복 삼아야

세계 각 국과 무역자유협정이 속속 타결되고, 또 진행 중에 있다. 상대국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농산물의 피해는 누구나 예측하고 있다. 외양간을 고치는 김에 국제 경쟁력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신토불이 국산 축산물의 국민적 신뢰도를 바탕으로 농축산업도 한류바람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상품 구매에 관한 국제 경쟁력의 근본은 품질에 있겠으나, 경쟁력의 밑바탕에는 검역위생이 있다. 우리 농축산물의 위생수준이 곧 수입 농축산물의 검역 기준이 되므로 하루 빨리 전염병 청정국의 지위를 회복하고, 위생적으로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과제다.

시련을 함께 딛고 일어선 성공은 더욱 아름답다. 우리의 고향인 농촌이 힘에 겹고 지쳐있는 지금, 도시사람들의 응원메시지가 그리울 때다. 이럴 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돼 함께 하는 것이 도시와 농촌의 아름다운 조화가 아니겠는가. 우리 농촌의 풍요로운 희망을 꿈꾸며, 지금의 시련도 함께 하면 언젠가 다 지나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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