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경업무를 보는 김대리가 쟁반을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 왔다. “김대리 그게 뭐요?”

“화단에 있는 앵두가 익어서  따왔습니다. 전번 겨울이 너무 추웠는지 이게 전부라서…” 빨간 앵두는 어른 손으로 한 주먹 정도의 적은 양이었다. “김대리, 고맙소. 가지고 왔으니 맛으로 두 개만 먹을테니 직원들에게도 맛을 보이지요”하며 쟁반을 다시 내미니 겸연쩍은 듯 잠시 서 있다가 쟁반을 들고 나간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앵두의 계절이다. 앵두는 비록 맛이나 향기는 그리 뛰어나지는 않으나 색깔만은 참 곱다. 초여름의 무더위를 앵두화채 한 그릇으로 이길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맛보다는 그 빛깔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어릴 적 살던 집에는 과일나무가 많았다. 밤나무, 호두나무, 대추나무, 복숭아나무, 감나무, 앵두나무 등이 집안 곳곳에 심어져 있어서 1년 내내 과일 걱정은 안 했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 보은을 떠나 청주로 이사 오시면서 심으셨다고 하니 내가 따먹기 시작한 때에는 수령이 족히 20년 정도 되었을 때이다.

  벌레 먹은 복숭아를 마루에 앉아 별을 세며 먹던 그 맛이 그립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다람쥐와 경쟁하며 정신없이 줍던 알밤의 아삭이는 맛이 그립고, 덜 익은 호두를 따서 손에 물이 들도록 껍질을 문질러 대고는 깨어 먹던 그 고소한 호두의 맛이 그립다. 모두가 배고픔의 맛이며, 추억의 맛이련만은….

우리 집 앵두나무는 남쪽 언덕위로 줄지어 5그루가 있었다. 앵두나무가 꽃을 피울 때는 언덕은 하얗게 물들다가 곧 바로 앵두가 익을 때에는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든다.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돌아와 평상시처럼 바가지를 가지고 앵두나무에 가보니 이게 웬일인가? 앵두나무 몇 가지는 부러져 있었고, 익은 앵두는 모두 누군가가 따가서 내가 딸 것은 거의 없었다. “엄마, 엄마, 누가 우리 앵두 다 따갔어요?“ ”그래? 누가 앵두가 많이 먹고 싶었나 보지“하시며 대수롭지 않으시다는 듯, 하시던 일을 계속 하고 계셨다. 나에게는 남의 물건에 손도대지 말라고 늘 말씀하시고는….

다음날 학교 파하기 무섭게 집에 와서 화장실 뒤에서 숨어서 지키고 있으려니 윗마을에 사는 용수와 용삼이가 담을 넘어 와서는 앵두를 따기 시작하였다. “야! 김용수! 박용삼! 너 죽었다”하며 내가 달려가자 두 친구들은 놀란 나머지 신발을 집어 던져 놓고는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어머니께서 창을 통해 나를 보시고는 불러 세웠다.

“이놈아! 친구가 앵두 좀 따 먹기로 뭐가 그리 소란이냐! 그 보다 좋은 것도 나누어 먹어야 친구지. 아이고! 너는 왜 이리 인색하냐?” 하며 혀를 차신다. “엄마, 주인 허락을 안 받고 따먹으면 도둑이라고 하시고는…”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어머니는 기가 찬 듯이 한참이나 나를 쳐다보시다가는 용수의 검정고무신을 내손에 쥐어 주시며 “어서 가서 용수 신발을 주고 와라.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고.”

나는 그 때 엄마의 이중적인 잣대에 굉장히 혼란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안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지금도 일상 중에 나의 인색함을 자주 느낀다. 그리고 그 때마다 어머니의 경고 소리가 들린다. “얘야! 네 자신에게는 인색해야 되지만, 남에게는 풍족한 사람이 되야지? 이 세상 떠날 때 네가 가지고 갈 것은 하나도 없어, 그러니 모두 나누어 주며 살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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