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지부장! 도대체 그 가방 안에 무엇이 있기에 날마다 신주단지 모시듯 가지고 다니시오?” 얼마 전 저녁모임에서 만난 기관장 한분이 가방을 들고 식당을 나가는 필자의 모습을 보곤 물어 보신다. “아! 이 가방 안에요? 보여드릴까요? 제가 공부하는 책 한권하고, 직원명단 수첩, 그리고 메모지가 전부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가방과 함께한 시간도 꽤 오래되었다. 가방 손잡이가 이젠 너덜너덜하니….

이 가방과의 만남은 지금부터 10년 전쯤이다. 교회 바자회에 참석하였다가 까만 서류용 가방이 있어 가격을 물어보니 단 돈 천원이란다.

가방 앞쪽에 인쇄된 것을 보니 어느 교인이 학술대회에서 기념품으로 받아 온 것 같았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새 것이었고, 튼튼한 재질로 되어 있어 “웬 횡재인가”하여 천원을 주고 얼른 사왔다.

가방은 검정색이라 때도 타지도 않았고, 재질이 튼튼하다보니 업무차 외국을 나갈 때는 각종 서류 가방과 돈 가방으로서의 역할을 아주 충실히 해냈다. 그래서 그런지 가는 곳마다 농산물 수출이 잘 이루어져 그 기쁨을 가방 가득 담아 오곤 하였다.

이젠 그 가방도 노년기에 들어섰는지 주인처럼 옆으로 펑퍼짐하게 퍼지기 시작하였고, 손잡이 부분은 너덜너덜하여 보기가 흉하다.

“여보! 가방 좀 좋은 것으로 하나사세요, 남들이 보면 궁상떤다고 하겠어요,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내의 성화는 벌써 오래 전에 시작 되었으나 막상 새 가방을 사려니 돈 보다도 헌 가방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버릴 수가 없었다.

“아직 쓸만한데… 손잡이만 수선을 해볼까?” “아이고 우리 집 자린고비 또 나타나셨네. 여보! 남들이 흉봐요. 국가 경제를 위하여 소비 좀 합시다”하며 오히려 나보다 더 열을 내기 시작한다.

전번 주일 딸아이가 국제 학술대회 참가하기 위하여 잠시 귀국을 하였다. 품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맞는지, 오자마자 논문 발표준비를 한다면서 자기 방에 들어가 열공을 하니 아내와 나는 말 걸기조차 힘들었다. 그리곤 다음날 아침, 미국에서 오시는 교수님을 영접한다며 서울로 “휑”하니 떠났다. 그 후, 딸아이를 다시 만난 것은 3일 후 그것도 한 밤중 이었다.

“아빠! 오늘 밤 만찬이 있은 후 사교모임이 있는데 저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교수님께 양해말씀 드리고 집으로 왔어요. 아이구 피곤해!” “그래 논문 발표는 잘 했니?” “예 제가 중국에서 직접 조사하고 연구한 것이라 현장감이 있어서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아참! 아빠, 이 가방 멋있죠? 이번 학술대회 기념품인데요, 아빠가 가지고 다니시면 멋질 것 같아요. 제가 아빠께 드리는 선물이에요” “그 아버지에 그 딸이네요. 잘 되었어요. 이젠 그 낡은 가방 버리고 이 가방 들고 다니세요.”

딸아이가 준 가방은 서류가방으로 아주 멋졌다. 색이며 모양이 전부터 사고 싶었던 바로 그런 가방이었다. “어허, 참 신기하기도 하네. 필요하면 어떻게 아시고 이렇게 채워 주시니 참 감사할 따름이네. 허허허”

그러나 낡은 가방 퇴역식은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이 마무리 되는 날 멋지게 하고 싶어서다. “가방아! 그 동안 고생 많았다. 그러나 어찌하겠는냐. 좀 힘들어도 며칠만 고생 좀 해다오. 너의 임무는 잘 알고 있지?” 나는 다 헤진 가방 손잡이를 다시 한 번 꼭 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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