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교회 가는 길목에서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는 고양이를 본다. 처음엔 나를 보면 기겁을 하며 차 밑으로 숨더니 요사이는 오히려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는 대수롭지 않은 듯 쓰레기봉투를 다시 뒤지니 고양이가 대담해진 것인지 아님 내가 예수쟁이인 것을 알고 안심을 하는 것인지….

사실 난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날카로운 이빨을 내 놓으며 “야옹 야옹”거리는 모습도 싫고 혹시 새끼인 경우 귀여워 안아 주기라도 하면 날카로운 발톱으로 손이며, 팔에 상처를 내어 더욱 싫다. 그런 내가 한동안 산사에서 고양이와 살았으니 이것도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었는가 보다.

산사에서 생활하다 보면 가끔 들쥐며 뱀들이 법당이며 산신각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낮에야 잘 보이니 피하든지 소리를 내어 쫓아내면 되지만 밤이나 새벽에는 잘 보이지 않아 위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느 날인가 스님는 절 아래 마을을 다녀오시며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오셨다. 그리고는 그날부터 고양이를 “해탈아, 해탈아”부르시니 모두들 고양이를 해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스님이 “해탈아! 해탈아”하고 부르면 귀가 얼마나 밝은지 법당에서 낮잠을 자다가도 또 산속을 돌아다니다가도 “야옹 야옹” 대답하며 나타나니 신기하기도 하였다. 

해탈이는 가끔 나를 찾아와서는 공부방 문틀에 앉아서 나를 감독하듯 한동안 쳐다보다가는 올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곤 하였다.

그러고 보니 30여 년 전 지금쯤이었나 보다. 석가탄신일이 가까워지자 조용한 산사에도 신도들의 발걸음이 잦아졌고 공부하던 학생들은 시끄럽다는 이유로 나와 몇 명의 후배들만 남겨두고 모두 집으로 휴가를 떠났다.

우리는 바쁘신 스님을 도와 연등접수도하고, 연등도 걸며 정신없이 보내다 점심 공양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산사에서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다 보니 모두 비빔밥을 먹게 되었다.

시장기에 밥을 정신 없이 먹는데 후배가 나를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야! 내 얼굴에 뭐가 묻었냐?”하자 후배는 갑자기 “끽끽”거리며 웃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는 “형! 형이 지금 먹는 밥그릇 해탈이 밥그릇 아니야?”하며 다시 웃기 시작하자 이번엔 다른 후배들도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하였다. 나는 먹던 밥그릇을 내려놓고 자세히 살펴보니 해탈이 밥그릇이 틀림없었다.

아마 신도 중 어느 분이 부엌일을 도와준다고 한 것이 고양이 밥그릇을 사람의 밥그릇으로 착각하여 거기에다 비빔밥을 담아 주었나 보다. 나는 그동안 맛있게 먹던 밥이 갑자기 넘어 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는 수저를 내려놓고 방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지난 후 아침 공양을 마치고 모두들 마루에 앉아 잡담을 하고 있는데 스님은 우리들을 보고 큰 소리로 말씀을 하셨다.

“영철이가 해탈이 밥그릇에 밥을 먹으면 영철이가 고양이가 되고, 해탈이가 영철이 밥그릇에 밥을 먹으면 고양이가 사람이 되는가?” 우리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모두들 멍하니 앉아 있으려니 “이 불쌍한 사람들아! 날마다 허상만 보고 사니 참된 나를 언제 본단 말인가? 밥그릇은 밥그릇 일뿐인데…” 하며 혀를 차시고는 부엌으로 들어 가셨다.

지금도 석가탄신일만 되면 그 때의 스님 음성이 들린다. “영철아! 껍데기 인생 그만 살고 너를 찾아라! 너를 찾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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