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은 참 아름다운 고장이다. 산이 많다보니 공기가 맑고, 계곡물 또한 끊이지 않으니 이 물들이 모여 많은 호수를 이룬다. 그래서 보은을 대표하는 표어가 ‘맑고 푸른 아름다운 고장 보은’인가 보다.

한 겨울 속리산에서 부는 바람은 눈물이 쏙 빠지도록 매섭기는 하지만 바람을 맞으며 걷다보면 머리가 상쾌해짐을 느낀다. 아마 목욕탕 속에서 느끼는 그런 시원함과 같다고나 할까?

그런 칼바람이 속리산을 막 떠나가던 날 속리산 속 깊고 깊은 마을 만수리를 찾았다. 오래 전에 농업인 한분과 방문 약속을 하였는데 구제역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시간을 내어 찾아보게 된 것이다. 전화 없이 불쑥 찾아갔건만 농장에서 일하시다 말고는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아이고 좀 전화 좀 하고 오시지, 그럼 점심을 준비할 텐데….” 내 손을 꼭 잡고 집으로 가는 중에도 섭섭한 얼굴이 가시지 않는다.

만수리는 속리산 깊고 깊은 두메산골이지만 길은 잘 포장되어 있고, 집은 모두 현대식으로 잘 지어져 있으니 혹시 오지마을이란 선입감을 가지고 간다면 실망하기 딱 맞는 곳이다. 만수계곡을 따라 줄지어 있는 손바닥만 한 밭에도 비닐하우스가 있고, 그 속에 각종 농기계가 즐비하니 누가 두메산골이라고 하겠는가? 이날 찾아간 농업인도 양봉과 버섯재배로 1년 내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양봉 관련 조그마한 공장도 운영 중에 있으니 부농이라면 부농이다. 판매는 주로 전국에 있는 회원들을 통한 인터넷 판매를 하고 있으니 속리산 두메산골에 사시는 ‘신 농업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모두 공부하러 대처로 나가고 부부가 양봉과 버섯농사를 지으며 바쁘게 살다보니 집이 너무 누추해서….” 손 빠른 부인께서는 어느 사이 농사지으신 사과와 배를 깎아 따끈한 꿀차와 함께 내어 주신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곳이 천국이고 두 분이 바로 천사이십니다.” “참, 지부장님 무늬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데…. 오히려 부끄럽습니다”하며 두 부부가 활짝 웃으시니 온 방이 환해지는 것 같다.

과일을 먹으며 가족이야기며 농사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구제역 이야기로 이어졌다. “구제역으로 고생 많이 하셨지요?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 옛날과 같이 소를 사육했다면 지금과 같은 구제역 대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금 우리 농법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식물이고 동물이고 너무 혹사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식물들은 땅 냄새도 못 맡는 양액재배로 비닐하우스 속에서 크고 있고, 짐승들은 운동은 고사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좁은 축사에서 사료와 항생제로 살만 찌우고 있으니, 정말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뿐만 아니고 사람들의 경우도 똑 같습니다. 요사이 건강관련 TV 프로에서 보면 고질적인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시골 생활을 통하면서 자연 치유되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곤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생각이 맞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는 만수계곡 물이 되어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손전화가 오는 바람에 우리의 이야기는 중단되고 말았다. “오늘 이야기는 저에게는 참 유익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방문하겠습니다”하고는 돌아서려니 속리산 맑은 바람이 또 뒤를 잡는다. 만수계곡을 내려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의 욕심으로 얼마나 많은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가? 아니 새로운 발견, 또는 발명이라고 자랑하는 것들이 정말 새로운 것들인가? 우리가 과학이라는 말하는 것들이 우리를 편하고 건강하게 만들고 있는가?

어느 사이 차가 보청천 뚝방길에 들어서자 차창 안으로 벚꽃이 들어온다. “아하! 벌써 강바람에 꽃눈이 내리는구나. 잠시 내려서 꽃눈 내리는 소리나 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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