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배우나 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중에는 주역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대역으로 갔다 성공하신 분들이 꽤 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나에게도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벌써 5년 전 일이 되었다. 청주에 있는 모 종합사회복지관에서 무료예식을 하면서 농협 본부장께 주례를 부탁하셨다. 본부장께서도 좋은 일이기에 쾌히 승낙을 하셨는데 갑자기 결혼식 날 급한 일이 생겨 본의 아니게 그 역할이 나에게 위임되었다. 아마, 그 당시 필자가 직장 내에서 봉사단체를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주례로 적격이라고 생각하셨는가 보다.

주례를 처음 서는 날, 긴장과 두려움으로 신랑 신부보다 더 떨었던 것 같다. 집에서 몇 번씩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예행연습을 하였건만 왜 그리 결혼식이 복잡한 것인지 하객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막상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당초 예행연습과 다르게 상황에 따라 새로운 순서가 들어가기도 하고 또 빼기도 하니 초짜 주례의 목과 등은 어느 사이 땀들의 미끄럼틀이 되어버렸다. 멍 한가운데 결혼식이 끝나자 혼자 중얼거리며 예식장을 빠져 나왔다. “다시는 내가 주례서나 봐라”

그러던 어느 날 “저어, 주례가 준비 되지 않아서 걱정인데 이번 딱 한번만…” 복지관 상담사의 다급함에 마음 약해져 또 한 번 나간 것이 이제는 일상의 즐거운 일(?)이 되어 버렸으니 참 역설적이다. 사실 집안에 따라선 결혼식 때 주례 선생님을 모시는 일이 쉬운 일 일수도 있다. 그러나 주례봉사를 통해서 안 것은 그렇지 않은 집안도 참 많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이나 신체조건이 정상적이지 않을 경우가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주례봉사는 그런 분들을 위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며, 또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그 동안 주례를 한 결혼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기도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오랜 총각 생활을 하다가 예쁜 외국인 아내를 만나 기뻐하는 신랑을 볼 때는 괜스레 내가 좋아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기도 하고, 어려운 역경과 시련을 거쳐 감격의 결혼식을 올리게 된 신랑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기억으로 사진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어려운 사정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칠십 평생을 살다가 장성한 자녀들이 힘을 모아 칠순잔치 겸 결혼식을 함께 올려 주던 결혼식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이 무엇인지, 효도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음미하기도 한다.

사실 고백하건데 노부부의 결혼식 주례사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칠순 노인을 모시고 젊은 사람이 주례사를 해야 하니 그게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많은 하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대체 주례가 무슨 말을 하나 숨을 죽이고 듣고 있는 바람에 더 긴장 했었던 것 같다. 그 때의 주례사 내용을 간단이 요약하면, 우선 두 분이 열심히 살아 온 삶에 대한 감사. 그리고 앞으로 두 분이 더 행복한 삶을 사시기 위하여 무엇을 하셔야 하는지를 말씀드렸고 마지막으로 두 분을 위하여 자녀들과 하객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두 분을 모셔야 하는지를 말씀드렸던 것 같다

그리도 춥던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었다. 삼년산성 아래 마을에도 노란 개나리가 만개하여 온 마을을 환하게 밝히고 있으니 분명 복지관으로부터 전화가 올 것이다 “지부장님, 다음 주말 예식이 있는데요. 다문화 가정이에요. 신랑은요…”  “아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시간 맞추어 예식장으로 직접 가겠습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일상의 전화 내용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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