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에서 속리산으로 가는 길목에 북실이라는 곳이 있다. 동학농민전쟁 때 큰 전투가 있던 곳으로 많은 동학군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독수리 떼가 나타나 장관을 이루고 있다. 파란 하늘에 커다란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는 독수리을 보고 있노라면 하늘의 왕으로서의 위엄과 함께 오만함까지지 느끼게 된다. 무심코 독수리들이 나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이들이 왜 보은에 나타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몇몇 지인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더 궁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객 한 분과 이야기를 하던 중 독수리 떼가 나타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북실에 있는 한 농장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돼지를 야산에 방목하여 기르다 보니 돼지 먹이를 야산 이곳저곳에 놓게 되었고 마침 지나가던 배고픈 독수리가 돼지와 함께 겸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맛있게 먹은 독수리가 이 소식을 다른 독수리에게 알려주자 소문이(?)  퍼져 이젠 커다란 무리가 모여들었다는 이야기다. “아하 이득이 있으면 사람이 꼬인다고 하더니 짐승들도 꼭 같네.”

어느 날인가 출장을 가다 보니 커다란 독수리가 유유히 날고 있는데 까마귀 두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독수리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까마귀보다 몇 배나 큰 독수리를 향하여 위에서 아래서 독수리를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그 용맹성과 야성에 대하여 감탄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꼭 전쟁터의 공중전 같았다. 커다란 독수리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은 듯 유유히 이리저리 날더니 계속되는 까마귀의 공격에 귀찮다는 듯 다른 곳을 향하여 날아갔다. “에이 하늘의 왕이 까짓 까마귀 하나를 못 이기고 뭐야?” 괜한 실망감에 혼자 중얼거려 보았다.

까마귀가 목숨을 내놓고 독수리를 공격한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까마귀들은 분명 자기들 영역을 설정해 놓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역을 침범한 독수리에게 경고했던 것 같다. 만약 독수리들이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영역을 침범한다면 아마 죽을 각오를 하고 싸웠을 것이고 혹시 지게 되면 영역에서 퇴출되든지 아님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영역 지키기가 어디 짐승들에게만 있겠는가. 우리 사람들에게도 영역이 존재하고 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도 보면 부모의 영역이 있고 그 중에도 아버지의 영역과 어머니의 영역이 따로 있어 서로 잘 지키고 또 보호해 주면 분명 행복한 가정을 이루리라 본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이 영역이 서서히 파괴되고 있어 씁쓸하다.

아버지의 영역은 누가 무어라 해도 가정의 기둥으로서 위엄과 기강이고 어머니의 영역은 집안의 해로서 따스함과 인자함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의 영역이 어머니에게 침범 당하더니 이젠 단순히 돈만 벌어 오는 머슴으로서의 영역만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우스개 소리로 시중에 돌아다니는 이야기지만 요사이 아버지의 서열은 맨 위가 아니라 집안에서 키우는 강아지보다도 못한 최하위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언젠가 미국에서 본 인디언처럼 자기들의 영역을 지키지 못한 조상으로 인하여 용맹성도, 지혜로움도 모두 잃고 말없이 기념품만을 팔고 있는 그런 모습에 지금의 아버지들 얼굴이 겹쳐서 보이는 것은 너무 비약적인 상상력일까? 북실의 까마귀처럼 본인들의 영역을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 “변화되는 사회현상의 일종”이라는 이론을 내세워 아버지의 영역을 침범한 사랑스러운 아내, 또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이 더 이상 아버지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경고해야 한다. “너희들 까불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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