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광천수로 알려진 초정약수는 고려 말기부터 존재했으며 문헌상에는 세종 26년(1444)에 발견되었다. 지하 100∼250m 석회암층에서 1일 약 8천500ℓ가 용출되는 냉천으로 수질이 좋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상당산성과 구녀성, 운보의 집과 한 번 구를 때 마다 삼년을 산다는 삼년고개 설화가 있는 이티봉도 있다.    

임금의 거동(擧動·나들이)은 군사훈련을 참관하거나 사신영접, 종묘 제사 참여, 왕릉을 참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건강이 좋지 않아 서울 근교나 지방의 질병 치료가 특효한 온천지를 행차하는 때도 있었다.     

초정약수터 천연기념물 지정 배제

초정약수는 조선시대 역대 임금 중 세종과 세조가 행차하여 요양을 함으로써 유명해졌다. 서울에서 초정리까지는 도보로 3∼4일 걸렸다. 파발마를 잇는 역참구간은 30리(10.8㎞)이고 사람을 태운 말이 하루에 가는 거리는 대략 20㎞정도이다. 임금이 행차를 할 때에는 그 규모에 따라 준비부터 출궁시간, 이동경로, 행차간 하교나 대화, 의식, 수행원, 환궁에 이르기까지 소상히 기록되어야 하나 세종과 세조의 행차 때에는 그 자세한 기록이 없어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노정(路程)에 따라 초정리를 오고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의 1차 행차 때는 서울에서 출발하여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양지리)에서 1일을 머무르고, 죽산현(현재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죽산리) 천민천에서 2일째 머물고 진천현 북평(현재 진천읍 성평리)에 3일째를 머문 후 초정리에 도착했다. 세종의 행궁이 있었던 곳은 현재의 초정 원탕이 있는 초정리와 왕이 머물렀다고 구전되는 청원군 북이면 선암리 1구 주왕 중 어느 곳인지 현재로서는 사료와 고고학적 유구가 없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세종의 1차 행차시 서울로 가는 길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진천을 거쳐 죽산, 양지현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낙생역(현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낙생동)을 거처 환궁했다.

세종의 2차 행차 때는 서울에서 15리 정도의 경기도 양주 전곶장(현재의 경기도 양주군 아차산 서쪽)을 거쳐 낙생역에서 1일을, 올라가는 길은 청주의 오근원(현재의 청주시 오근장동)을 거쳐 죽산, 양지, 낙생에 머물렀다.   

세조는 초정행차를 하면서 사냥과 군사훈련을 참관하고자 2일 정도 더 걸려 도착했다. 경기도 광주 문현산(현재의 광주군 오포면)에서 사냥을 하고 죽산 연방(현재의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 선읍)에서 1일을 머무르고, 진천군 광석(현재의 진천군 사석리 성암)에 2일째 머물면서, 다음날 진천 길상산에서 사냥과 새벽에는 야조(夜操·야간훈련)를 2일간 시행하고 초정리에 도착했다. 이어 세조는 온양으로 가는 길에 속리산 복천암을 방문해 신미대사를 만났다.

온양온천으로 가는 길은 청주를 지나 피반령을 넘어 회인현에서 1일, 수리티재를 지나 수한면 교암리를 거쳐 보은현 동평(현재 보은읍 이평리)을 지났다. 세조는 아흔아홉구비 말티고개가 험해 연에서 내려 말을 타고 넘었고 저녁때 속리산 아래 마을을 연을 타고 지나갈 때 가지를 들어주었다는 병풍송(현재의 정의품송)을 지나 오봉산 아래 대궐터(현재의 외속리면 장재리 한옥마을)에 행궁을 짓고 머물며 신병을 치료하고 그 이튿날 복천암을 찾는다.  문의현을 거쳐 전의현(현재 연기군 전의면)에서 1일을 머무르고, 그 다음날 온양에 도착한다. 세종과 달리 세조는 그가 쿠데타에 의해 세워진 정권이었으므로 실추된 왕권을 강화하고자 자주 군사 훈련을 했다. 또한 조카에게 왕위를 빼앗았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고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행차 때마다 백성들에게 접근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세종의 초정리 행차는 이곳에 머물면서 집현전 학사들과 한글 창제의 마무리 작업을 비밀리에 수행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리하여 세종은 속리산 복천암에 주재하였던 범어의 대가이자 어문학자였던 신미대사와 한글 창제 작업을 같이 구상하였고, 후에 세조는 그 고마움을 전하고자 직접 복천암까지 찾아 갔다.  

역사성 발굴 적극 나서야

임금이 지방을 행차 할 때는 백성의 고충을 직접보고 들을 수 있는 민정시찰의 기회이므로 세종과 세조 또한 오가는 길에 직접 민원을 받아 처리하는 여론정치를 실시했다.

2010년도에 강원도의 약수터 3곳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북한에서는 이미 약수터 11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 약수터 심사기준은 보존가치가 있는 전국의 30개 약수 중 수질·역사·설화·경관 등이 우수한 곳을 선정했다고 하는데 초정약수는 배제되었다.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과 문화재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역사성과 수질이 입증된 초정약수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향후 초정약수가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수질 개선과 보존은 물론 역사성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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