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반, 집에서 나오니 차가운 새벽공기에 코끝이 찡하다. 한 추위는 지나갔다고 하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보은은 평지보다 4∼5도 더 춥다. 손전등을 비추며 어두운 골목길을 조심스럽게 나와 보청천 제방길로 들어서니 강바람이 ‘휘익 휘익’ 불어온다. 찬바람에 갑자기 눈물이 흐르며 앞이 잘 안 보이지 않는다.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이평교로 올라서니 우렁찬 물소리가 들린다.

가던 길을 멈추곤 다리 아래를 처다 보니 아직도 꽁꽁 언 보청천은 파란 새벽별처럼 추위에 떨고 있다. 며칠 따뜻한 기온에 얼음이 녹은 것인지, 아님 군청에서 보문을 연 것인지를 알 수 없지만 물소리는 그렇게 봄을 알리고 있다. “아하! 봄은 긴 겨울 동안에도 얼음 속에서 오고 있었구나.”

20대, 청운의 꿈을 품고 한 동안 단양에 있는 조그마한 암자에 기거할 때였다. 여름방학이 되자 함께 공부하기를 원하던 후배들이 책 보따리를 한 짐씩 지고는 암자로 모여 들었다. 조용하던 산사는 도(?)를 닦기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는 도반들의 용맹정진으로 의자가 휘일 정도였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아침 공양을 하려고 요사채로 건너가려는데 후배가 피곤한 얼굴을 하고는 한마디했다 “형! 난 저 계곡물 소리에 한잠도 못자겠어요. 그냥 하산할까 봐요.” “그랬구나, 장마 때라 그래. 조금만 있으면 소리는 작아질 거야. 그리고 적응이 되면 오히려 물소리가 안 들리면 이상할 걸”하며 위로를 했었다. 그 후 자세한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후배는 잘 적응했었던 것 같다.

암자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세상에 똑 같은 소리는 없다는 것이다. 계곡물 소리를 조용한 가운데 듣고 있노라면 한 순간도 같은 소리는 없었다. 물이 흐르는 속도라든지 조그마한 돌이나 풀잎으로 인한 걸림은 물소리를 다르게 만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가끔 암자를 감싸고 있는 뒷산(제비봉)에 올라 커다란 바위에 앉아 있노라면 남한강(지금은 충주호가 됐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 역시 한 순간도 같은 소리는 없었다. 어느 때는 아기 숨소리 보다 더 부드러운 소리가 나는가 하면 어느 때는 기차가 지나갈 때와 같은 거친 숨소리가 바람이 되어 내 귀를 흔들었다. “아하 이것이 인생이구나. 어찌 내 생의 한순간 순간이 모두 같을 수만 있겠는가!”

어느 날인가 스님께서 단양으로 장을 보러 가시다 공부방에 들리셨다. “영철아, 내가 산아래서 부르면 빨리 내려 오거라. 오늘은 짐이 많아 나 혼자 절까지 가지고 오기 힘들 것 같다.” “스님, 산 아래에서 소리 지르면 여기까지 들려요? 거리가 있는 데요.” “내 목소리는 계곡물을 따라 올라 오니 네가 깨어있으면 다 들린다”하시며 바랑을 메시곤 산길을 따라 내려 가셨다.

얼마가 지났을까. 공부를 하고 있으려니 분명 스님의 목소리가 아주 조그맣게 들렸다 “영처라아아.” “예에, 스님! 내려갑니다.” 쏜살같이 산 아래로 내려가니 스님은 차에서 짐을 잔뜩 내려놓고는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하, 영철이가 깨어 있었구나. 봐라, 여기서 절까지 멀기야 멀지만 네가 깨어 있으니 듣고 오지 않았느냐?”하시며 짐 한 덩이를 지시고는 산길을 먼저 오르셨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스님도 돌아가셨고 필자의 머리도 어느 사이 반백이 됐다. 많은 일로 혼란스럽거나 또는 고민거리로 괴로울 때면, 요사이도 스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영철아, 깨어있어라! 그럼, 세상의 모든 소리를 너는 들을 수 있단다. 아주 작은 계곡물 소리도, 제비봉을 휘감는 바람소리까지도 말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