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인지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어미 소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인터넷 동영상으로 유포되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우시장에서 주인이 새끼를 팔려고 하자 슬픈 감정을 눈물로 표현한 것이다. 마치 사람처럼…. 그 모습에 주인도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새끼를 팔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데려갔다는 기사도 곁들어 있었다.

짐승들의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어디 소뿐이겠는가? 중국 동진시대에 생긴 ‘단장(斷腸)’이라는 말의 유래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환온이라는 장군이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양자강 중류의 삼협이라는 협곡을 통하여 지나갈 때 부하 중 한사람이 새끼 원숭이를 붙잡아 배에 싣고 떠났다. 이를 본 어미 원숭이가 새끼가 탄 배를 쫓으며 너무나 슬피 울다가 배가 강기슭에 닿자 새끼를 찾아 배에 올랐고 조금 있다 어미 원숭이가 죽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상이 여겨 어미 원숭이 배를 갈라 보니 애통함이 얼마나 컸는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하니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성애에는 다름이 없나보다.

요사이 농촌에서는 소도 사람도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다. ‘구제역’이라는 강력한 전염병으로 인해 이유도 모르고 죽어 땅속으로 묻혀야 하는 소들의 눈물과 이를 보내는 주인들의 눈물이다. 구제역 청정지역인 보은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지만 공무원들도 짐승을 묻어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니 난리라면 난리다. 충주에서 소를 키우던 농민이 자신의 축사에서 키우던 소가 구제역에 걸리자 애지중지 키우던 소를 땅에 묻어야 한다는 사실에 그만 자살하고 말았다는 기사를 읽고 나도 모르게 한숨과 슬픔이 밀려왔다

소는 다른 짐승과 다르게 농촌공동체의 한 구성원이었다. 낮에는 주인과 같이 농사를 짓기도 하고 어두운 밤에는 집안의 수호자가 돼 주인을 돌보기도 했으니 가족으로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자식에게만은 더 이상 가난을 물려 줄 수가 없어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식들을 도시로 유학을 보낼 때, 소는 우골탑이 돼 나타나기도 했으니 농촌경제의 큰 재산이라면 재산도 됐다

이런 소를 살리려고 온 국민이 한마음 돼 예방에 전심전력하고 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더 창궐하고 있으니 마음만 점점 타들어 가고 있다. 이제는 종교계까지 앞장서서 기도회를 하며 이 재앙을 빨리 종식시켜 줄 것을 신에게 간청하고 있으나 그 응답은 빨리 오지 않고 있어 이 역시 답답하기만 하다.

그리도 춥던 지난달 하순께 소처럼 우직하게 가족을 위해 일만 하시던 둘째 형님께서 암을 이기시지 못하고 끝내 돌아가셨다. 필자에게는 정신적 지주였던 분이었기에 그 슬픔은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처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한 평생을 선생님으로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셨던 분. 늘 성실하고 정직하라고 말씀 하셨던 분. 그 분 역시 인간이기에 좀 더 살아서 좋은 세상을 보기를 원했던 그런 분이었다.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제자들이 찾아 왔다. 그 분들 중에는 중학교 입학금을 대어 준 제자도 있었고, 친척도 싫어하는 재정 보증까지 서주면서 취직을 시켜준 제자들도 있었다. 선생님께 마지막 절을 하면서 슬피 울다가 몇 십 년만의 동기동창을 알아보고는 서로 반가워하는 풍경을 보면서 이 역시 형님의 마지막 제자 사랑이 아닌가 생각해 봤다.

오늘도 TV에서 소들을 본다. 그리고 그 커다란 눈망울 속에서 형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나의 단순한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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