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비가 너무 자주 내렸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에 벼는 겉만 ‘빤지르르’ 했지 속은 다 쭉정이가 되어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흉년으로 발표됐다. 과일 역시 비가 많다 보니 일조량이 적어 제대로 익지도 않았으며, 혹시 익었다 해도 수분이 많아 표피가 갈라지는 열과현상으로 상품성이 크게 떨어졌다. 이런 기상이변은 결국 배추파동으로 이어져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금값만치나 비싼 김치 아닌 금치를 맛보는 계기도 됐다. 도시 소비자들이 생각하기에는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면 농가소득이 향상되리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흉년에는 팔 물건이 없으니 그 역시 틀린 생각이다.

풍년은 풍년대로 흉년은 흉년대로 농민들에게는 걱정만 남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조금 다행이라면 그 동안 농업에 대한 경시풍조가 만연했던 국민들에게 농업에 대한 경각심을 남겼다는 것으로 할 수 있을까? 필자의 경우 농업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거나 업무 계획을 세우는 일은 주로 퇴근 후 한 시간 정도 걷기운동을 하면서 한다. 봄과 여름에는 보청천 제방 길을 주로 걸었으나 겨울에는 기온도 내려가고 바람이 차서 군청을 중심으로 인근 가로등 길을 골라 걷는다. 보통 한 바퀴 걷는데 30분 정도 걸리니 두 바퀴 돌면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눈이 많이 내린 지난해 말인가 보다. 평상시처럼 저녁을 먹고 운동복으로 단단히 무장을 한 후 군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군청을 두 바퀴 째 돌아올라 가다 보니 무언가가 차도를 가로질러 쏜살같이 산속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마침 손전등이 있어 산 속을 비추니 토끼 한 마리가 덤불 속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 보였다. ‘아하 눈이 많이 와서 먹을 것이 없으니 위험을 무릅쓰고 인가까지 오는 구나’하며 다시 걸으니 이번에는 좀 더 큰 것이 내 앞에서 ‘후다닥’하며 달려간다. 너무나 놀라 나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손전등을 비추니 이번엔 고라니가  숲속에서 저도 놀랐는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사람이고 동물이고 먹을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도 있고…. 하물며 짐승들이야 배가 고프니 목숨을 걸고 먹을 것을 찾아 눈 속을 헤치고 민가로 달려나오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한 동안 언론에 보도됐던 멧돼지가 생각이 났다. 도심지에 멧돼지들이 나타나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민가나 차량을 습격해 많은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이와 같이 멧돼지들이 도심지에 나타나는 이유로 일부에서는 겨울이 되니 산에 먹을 것이 없어 민가로 내려온다고도 했고, 일부에서는 자연보호로 인해 멧돼지 수가 급격히 늘어나서 영역 싸움에서 진 멧돼지가 도시로 내려온다고도 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짝짓기 때가 돼 흥분한 멧돼지가 민가로 온다고도 했으나 정확한 이유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해당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이유가 또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확한 것을 멧돼지에게 직접 물어 보면 어떨까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해 본다. 만약 멧돼지가 우리말을 알아듣고 또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런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보시오 인간님들! 당신들은 참 뻔뻔하오. 왜냐하면 당신들이 지금 당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곳들 말이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요사이 다니는 도심지라는 곳을 보시오. 그 곳은 오래 전 우리 조상님들의 영역이라는 것을 모르시오? 우리 조상님들의 땅을 당신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야금야금 빼앗아 놓고는 우리가 놀러 가면 왜 우리 영역을 침범하느냐고 난리를 치니 우리가 보면 이것이 적반하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요. 당신들은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를 구현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웃기는 일이요. 안 그렇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요. 우리의 고향, 즉 멧돼지들의 고향을 돌려 달라는 것이오. 어서 돌려주시오.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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