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평온했던 화요일 오후 느닷없이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해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북의 포격은 군사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인 거주지까지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 이로 인해 민간인 2명과 해병대원 2명이 사망했고 십수명이 부상했다. 사실상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이를 놓고 우리 군이 대응을 잘 했느니 미흡했느니 말들이 많은데 사건 이후 속속 드러나는 정황을 종합해보면 대응 자체를 논하는 게 어불성설이다. 그냥 앉아서 당했다고 해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군당국 안이한 정보 오판 화불러

북한은 연평도 포격 직전에 경고성 전언통신문을 보내왔다. 군당국은 이와 관련, “군사훈련 때마다 유사한 전통문을 보내서 이번에는 묵살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게 제 정신인가? 불과 8개월 전에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시켜 수병 46명이 전사했다고 군당국이 발표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우리 영해에 귀신같이 잠입해서 말이다.

이제껏 보여온 북한의 행태는 상식을 뛰어넘었다. 럭비공처럼 튀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이런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경계는 더욱 세밀해야 하고 특히 만에 하나를 염두에 둬야 한다. 북한은 지금 3대 세습을 위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다. 내부 결속은 외부의 적이 있을 때 효과가 큰 법이다. 포격 배경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어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북한이 김정일 체제 구축 때 판문점 도끼만행을 저지른 전례에 비쳐볼 때 북한이 김정일에서 김정은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이번 연평도 포격을 계획했다는 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을 무시한 채 북한이 그냥 어깃장으로, 아니면 상투적으로 경고문을 보낸 것으로 우리 군당국은 판단했다는 말인데 이 잘못된 판단이 어떤 결과를 낳았나?

오판은 김태영 국방장관과 게이츠 미 국방장관 간 전화통화에서도 드러난다. 양국 국방장관은 이번 북한의 도발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의도적 공격’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그런데 이런 북한의 계획을 우리 정부는 몰랐다. 결국 천안함 폭침도 그렇고 이번 연평도 도발은 그냥 넋을 놓고 당한 셈이니 국민이 정부의 무능을 탓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선부대에 이런 일이 있으니 적 동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라고 하든지, 아니면 이런 일이 있었다고 간략하게라도 전해 경각심을 일깨웠다면 이렇게 눈뜨고서 참담한 피해는 입지 않았을 것이다.

정보당국이 이미 지난 8월 북한군 내부통신을 감청해 ‘서해 5도에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을 파악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 감청 내용은 첩보수준에서 다뤄지다 정보수준으로 격상됐다고 한다. 김황식 총리는 “그런 경고는 북한이 항상 보내오는 것”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대통령 유고시 권한대행 1순위인 총리가 이런 안이한 안보의식을 갖고 있고 더욱이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군의 상황 판단력이 이런데 국방백서 만들 때마다 국가 안위를 걱정하는 많은 국민이 진보, 보수로 나뉘어 북한을 주적으로 해야하느니 마느니 갑론을박한 게 헛심만 쓴 꼴이다.

일 터진 후 무엇이 우선인지 일거리를 찾지 못하는 청와대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는 최초 지시 여부를 놓고 청와대와 국방장관이 진실게임을 벌이는 꼴이라니…. 물론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중요하다. 특히 이번과 같은 심각한 상황에서는 대통령의 말이 곧 군령(軍令)이어서 그 한마디에 국지전으로 끝날 수 있고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전투태세가 유지되고 있는 시점에서 굳이 이에 대한 진위를 확인하겠다는 정치권과 이런 정치권에 휘말려 말을 번복한 국방장관, 애초에 갈짓자 브리핑으로 빌미를 제공한 청와대 모두 자기들이 삼류라고 떠벌리는 칠뜨기 노릇을 했다. 이게 제대로 된 정부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인가?

갈팡질팡 정부여당 신뢰 못해

집안싸움을 하다가도 강도가 들면 힘을 합쳐 막는 게 일반적인데 긴급한 상황에서 어찌 그리 태평하게 말싸움을 하는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대통령, 총리, 장관, 국정원장, 원내대표 등 정부여당 지도부가 군대를 가지 않아 군 관련 사고 때마다 갈팡질팡해 ‘군 면제정권’이라는 말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취미를 가졌다는 등의 비아냥거리는 말이 나돌까? 계속되는 군 사고에 앞으로 공무원은 군필자를 뽑아야 한다는 현 정부를 조소하는 말도 이제 거리낌 없이 나온다. 사전인지는 못하고 사후대처는 허술한 이 정부의 모습에 국민들은 이제 믿을 곳은 ‘나 밖에 없다’는 자조를 하고 있다. 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이 정부는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공적이 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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