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씨와 본관(本貫·관향) 제도는 삼국시대부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왕이 성을 호족들에게 내리면서 성씨문화가 대중성을 지녔으나 모든 백성들이 성씨를 갖게 된 것은 신분타파가 이루어진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부터이다.  

오늘날 여자 이름 중 가장 많은 것은 영자라 한다. 일본은 여자들 이름 뒤에 보통 ‘코’를 붙이는데, 그것을 우리 식으로 읽으면 ‘子’가 되어 일본식 이름인 영자(英子·에이코)가 많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는 ‘順’, ‘淑’, ‘姬’ 등이 대종을 이루었다.

출생·성·이름 알 수 없어

사실 조선시대 사대부 계층의 여성들도 특정가문의 구성원을 표시하는 ‘전주이씨’ 등으로 전해지고 일반 여성들은 이름을 천히 여겨 아예 없거나 꽃 이름이나 간난이 등으로 불리어졌다.

해방 이후에는 남아선호 사상으로 여자 아이이름을 ‘必男’, ‘後男’, ‘畢女’, ‘畢順’ 등으로 짓기도 했다. 오늘날은 한자와 순 한글을 비롯하여 글로벌 시대에 맞게 ‘세라’, ‘세리’ 등 영어 표기와 발음이 쉬운 이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구한말 프랑스 공사를 지낸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와 궁중무희 리진과의 로맨스를 소재로 한 김탁환과 신경숙의 소설 작품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달 중순 경 상명대학교 주진오 교수에 의해 밝혀진 것은 사실 필자가 2009년에 출판한 ‘잃어버린 직지를 찾아서’에서 실존인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리진은 출생이나 궁중생활에 관련된 기록은 물론 성과 이름을 자세히 알 수가 없으며 이폴리트 프랑댕(Hippolyte Frandin)이 쓴 ‘한국에서(En Coree)’는 이름이 ‘Li-Tsin’으로 표기하면서 한자 병기를 하지 않아 이를 중국식으로 읽어 이심(梨心, 李心), 또는 원문 그대로 읽어 번역자 마다 ‘이진(李眞)’, ‘리진’, ‘리심’, ‘이화심(梨花心)’ 등 다르게 표기 되었다.

재불학자 이진명씨는 ‘Li-Tsin’이란 이름의 뜻을 ‘영혼의 꽃 : Fleur dame’(flower of mind)으로 해석하여 배꽃의 마음(Coeur de poririe)인 ‘이심(梨心)’이라 풀어 읽었다.   

리진이 소속되었던 궁중 음악과 무용을 담당한 장악원(掌樂院)은 배꽃이 많다하여 이원(梨院, 梨園)이라고도 불렸다. 

조선시대 장악원은 성종 때에는 서부(西部) 여경방(餘慶坊)에 있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선조 말년에 남부(南部) 명례방(明禮坊·옛 내무부 청사부근)에 구한말까지 존속했었다. 본래 이원은 중국 당나라 현종 때 고사(故事)를 따라서 부르던 장악원의 별칭으로 조선시대에 사용되었으나 영조가 우리나라에 적합하지 않다하여 장악원으로만 부르라고 지시한 바 있다. 장악원에서는 예조에 소속되어 궁중연회에 따르는 아악(雅樂)과 속악(俗樂) 및 무용을 총괄했다. 리진은 장악원의 궁중무희로 내연(內宴)이 있을 때 동원되었다.

정조 때 문인 이옥(李鈺?1760-1813)의 전집 2권 중 여자는 심(心)으로 이름을 짓는다(女子名心) 편을 보면 경상북도 성주(星州)나 봉화의 봉성(鳳城) 등 영남지역에서는 여자들의 이름 끝자에 계심(桂心)·화심(花心)·녹심(綠心)·채심(彩心)·분심(粉心)·금심(琴心)·옥심(玉心)·향심(香心)·이심(二心)·고읍심(古邑心) 등 여자를 상징하는 한자와 함께 심(心)자를 쓰고 있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필자의 지나친 추측일인지 몰라도 리진은 장악원 소속에 영남지방 출신이어서 본래부터 자신이 이름 없었다면 소속기관과 리진의 고향에서 많이 쓰는 여성이름을 본 따 이심(梨心)이라고 한 것을 프랑스어로 옮기면서 ‘Li-Tsin’으로 표기하였으며 우리는 프랑스어 읽기 방식에 따라 한글표기가 다양하게 달라진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토착 성씨 286개, 귀화성씨 442개 중 ‘梨’씨는 없기 때문에 리진 자신이 이렇게 썼을 리는 없고 외국인의 무지로 ‘李’씨의 오기일수도 있다.

아니면 오늘날 연예인처럼 리진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자신의 예명일 수도 있다.

프랑댕과 근무시점 불일치

리진의 연인 플랑시의 한자 이름은 콜랭 드에서 한자의 음을 빌어와(音借) 중국에 근무할 때부터 ‘葛林德’이라 했는데 당시 서양인들은 동양의 미덕을 뜻하는 ‘德’자를 많이 사용했다.

플랑시와 함께 한국에 파견되었던 프랑스 선교사 귀스타브 뮈텔주교(Mutel, Gustav Charles Marie)의 한자이름도 ‘閔德孝’로 미덕과 효를 뜻하는 이름이었다.

리진과 플랑시와의 로맨스는 이러한 사실을 기록한 프랑댕과의 관계와, 근무시점 등이 일치 하지 않고 이를 비교할 수 있는 사료가 거의 없어 역사적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당시의 미개화된 조선 여인의 이국인과 사랑이야기는 오늘날 또 다른 매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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