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정 희 <전 충북여성단체협의회장>

세월의 나이테가 두껍게 쌓여도 ‘고목’이 되기를 거부하는 거목. 그 나무는 여전히 생명력으로 부지런히 싹을 틔우고 과실을 맺는다. 그 과실은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함과 풍성함을 지녔다. 그 주인공은 충북 여성계의 거목 박정희 전 충북여성단체협의회장(79)이다.

지금은 젊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뒤에서 든든한 그늘이 되어 힘을 주고 있는 박 전 회장이지만 올해 일흔아홉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충북 여성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여성들에게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시대를 올바르게 진단하고 밑바닥부터 소통할 것을 주문할때의 형형한 눈빛은 여전히 청년의 것이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던 그가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농촌진흥청 지도직 공무원으로 ‘농촌 여성’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여성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거의 전무한 시대에 직장여성으로 퇴직후에는 여성운동가로, 가정보다는 바깥에서 활동을 많이 했던 박 전 회장은 그 누구보다도 직장여성의 육아문제와 저출산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요즘은 신문이나 방송이 저출산 문제를 이슈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가족이나 여성에 대한 시각은 없다. 오직 저출산 문제만 걱정하는 정부가 내놓는 복지나 가족정책이라는 것이 ‘어떻게 여자들을 꾀어 애를 더 많이 낳게 하느냐’는 거다. 여자들이 돈 조금 더 받는다고 애를 더 낳겠는가. 그런데도 정부정책은 여성을 애 낳는 수단으로만 보고 돈으로 꾀려하고 있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있는 정책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문제는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이 나서서 함께 사회, 정책, 관념, 생활을 바꾸자고 해야 여성들이 애를 낳는다. 남성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정부는 저출산 통계만 발표하고 있다”며 “충북의 여성계는 여성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여성들에게만 문제를 찾지 말고 남성들의 인식변화에도 힘써야 하며, 언론도 여성들에게만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남성들의 생각을 바꿔줄 수 있는 희망적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충북 여성계에 대해 “여성단체간 더 소통하고 뭉쳐야 충북 여성의 미래가 밝다”고 후배 여성운동가들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전했다.

도내 여성계에서는 여성 CEO간의 모임이나 새마을부녀회를 비롯한 직능 여성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으나 금융계, 학계, 정계 등 각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들간의 네트워크와 지역사회 내 활동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여성의 직업세계 진출이 당연시되고 앞으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전문분야 여성들간의 네트워크와 지역활동에 보다 주력할 필요가 있다”며 “여성단체의 활발한 활동은 긍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성단체 밖에서 아직 조직화되지 못한 여성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특히 최근에는 여성단체들이 여성 문제별로 분화 발전하다보니 때로는 힘을 모아서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생긴다. 하지만 충북 여성단체의 경우 성공적인 연대경험이 많이 축적돼 있지 않다. 여성단체간이나 여성단체 내부에서 활동을 둘러싼 각자의 주장이 달라 갈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충북 여성단체에는 여협과 비여협을 망라해 중심이 될 수 있는 원로, 즉 모든 여성단체나 여성단체장이 존경하는 카리스마적 여성활동가가 없는 실정이다.

그는 “여성들의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있다. 이주여성·농촌여성·미혼모·한부모가정·성폭력 등 여성단체들이 힘을 모아서 한목소리를 내야만 여성들에게 이로운 정책이 제언될 것이다. 각 관심분야로 단체가 나눠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여성단체의 리더들이 원칙과 상식을 벗어난 외압에 맞딱뜨릴때 함께 중지와 힘을 모아 위기상황에 대응하도록 성숙한 연대활동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계 거목 빈자리에 희망의 얼굴들이 떠오르고 있다. ‘여성운동은 위에서 시작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여성들의 생활 속 밑바닥부터 공감을 얻어야 사회의식이 변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그는 자신이 꿈꿨던 여성시대의 희망을 후배 여성운동가들에게 걸었다.

한편 박 전 회장은 1999년과 2000년에 충북여성단체협의회장을 역임하면서는 문맹여성들을 위한 한글교실을 개설하고 가정폭력 예방 운동, 여성차별 신고 센터 운영 등을 처음으로 실시했다. 특히 몇십년식 단체장으로 재직했던 당시 여성단체의 풍토 개선을 위해 여성단체장을 단임으로 사직하고 후배 여성들의 활동터전을 만들어 주었으며 자원봉사활동 전개로 여성단체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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