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5>]--김주란<청주시립정보도서관>

책읽는청주 도서선정위원회는 올 가을, 청주 시민이 함께 읽고, 이야기하면 좋을 책으로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선정했다. 이 책은 사색의 계절 가을에 읽기 좋으며, 현재 청주시 권역별 도서관에서 쉽게 구해 볼 수 있기에 많은 시민들이 혜택을 보았으면 해서 추천한다.

이 책의 저자 정약용은 추사 김정희가 “감히 다산의 세계를 논평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불세출의 대학자였다. 그의 학문세계는 철학, 정치, 행정, 의학, 지리, 과학기술 등 많은 부분에 걸쳐 실로 방대했으며 500여권에 이르는 경이로운 저서를 남기고 있다. 

하지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그의 방대하고, 어려운 학문세계 어디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은 아니고, 대학자이기 이전에 가슴 따뜻한 아버지요, 정 깊은 동생이며, 올바른 스승이었던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고 있는 서간문이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 아들에게 주는 가훈, 둘째 형님께 보낸 편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글 모두 4부로 나눠 총 61편의 편지가 수록돼 있다. 인간 다산이 유배라는 천신만고의 외로움 속에서 간절하게 보낸 편지들 속에는 너무도 진솔한 한 인간의 내면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폐족(廢族)이 글을 읽지 않고 몸을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하겠느냐. 폐족이라 벼슬은 못하지만 성인이야 되지 못하겠느냐, 문장가가 못 되겠느냐.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책을 읽어 이 아비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말아다오.”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들들에게 주는 편지글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이 실의에 빠지지 않도록 늘 엄격하게 격려했던 다산의 준엄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가족간의 윤리, 친인척과의 인간관계, 양계, 양잠하는 법, 심지어 친구를 사귀고 술을 마시는 법도까지 세세하게 일러주는 편지들을 보면 과연 오늘날에도 이 같은 부자(父子)관계가 있을까? 돌아보게 된다.

또 편역자 박석무 고전번역원장의 다산과의 인연에 대한 술회 또한 이 책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데, 그는 네 차례의 옥고를 치르면서 어둡고 불안한 감옥생활에서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다산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산처럼 유배돼 비로소 가슴으로 다산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는데, 18년 유배생활 속에서 학문을 성숙시킨 다산처럼 그의 다산연구도 감옥 안에서 영글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 치열한 시간의 결과물로서, 200년이라는 시차를 사이에 두고 각각 시대의 고뇌와 민중의 아픔을 껴안고 고민해온 두 학자의 소통까지 오롯이 담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편역자 박석무 고전번역원장이 22일 청주를 방문한다. 청주시립정보도서관 초청으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담긴 다산의 학문과 사상에 대해 강연할 예정으로 이번 기회에 다산 정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어보고, 역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가을의 풍요로움이 들판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이번 가을이 가기 전에 디지털 기기가 전하는 짧고 단편적인 글쓰기가 아닌 깊은 사유와 진정한 울림이 담긴 편지 한 장을 쓰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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