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8·8 개각 인사청문회 때 총리와 장관, 청장후보자들에게 쏟아진 의혹과 이를 해명하는 당사자들의 자세, 그리고 이에 대한 청와대와 여권의 인식이 놀랍다. 그들이나 일반서민이나 같은 시공간에서 때론 사이좋게, 때론 티격태격하며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시공간에 그들만이 독과점하고 있는 부분, 즉 서민은 감히 접근해서도 안 되고 접근을 할 수도 없는, 철저히 차단된 세상이 따로 존재하고 있음이 청문회를 통해 확실하게 드러났다.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다고 느낀 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준법의식 무너뜨린 8·8 개각

삶의 방정식이 다르다. 서민방정식에서 도덕성은 변하지 않는 상수이다. 서민 세상에서 아무리 처해진 상황이 달라도 도덕성은 항상 불변이어서 고정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그들 방정식에서 변수이든 상수이든 아예 없다. 그러니 그들의 사고에 죄의식이 있을 수 없다. 서민세상에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 세상에서는 그렇다.

서민과 그들이 서로 간섭하지 않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사는 길은 섞이지 않는 것뿐이다. 국민 다수인 서민은 섞여 살든 말든 별 관심이 없다. 그저 비슷한 처지에서 아옹다옹하며 사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소소한 것에서도 재미를 찾는다. 비록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 못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주 풍요롭다.

그런데 이런 평온한 분위기를 항상 그들이 깬다. 서로 남남으로 살면 될 터인데, 매우 폐쇄적으로 살고 있는 그들이 항상 서민들과 어울려 살고 싶어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엄밀히 말하면 서민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그들은 이 또한 어울려 사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민을 그들 세상으로 끌어들이거나, 아니면 그들이 서민 세상으로 나와야하지만 절대로 전자의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서민 세상으로 나온다. 그 절차 중 하나가 청문회이다. 요식행위이지만 양자 삶의 방식을 서로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청문회 대상자는 불행하게도 서민 세상의 지도층이다. 싫든 좋든 서민 세상은 그들의 지배 하에 놓인 지 오래됐다.

예전 청문회 대상자들은 서민세상을 그나마 존중했다. 그들이 그들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건 서민세상으로 나온 이상 서민사회에 동화하려고 노력을 했다. 서민 세상에서 받아주질 않으면 순순히 물러났다. 청문회가 사회 공통 규범을 만드는 순기능 역할을 한 것이다.

현 정권이 들어서고 어떤가? 오히려 시회통합 훼방꾼이 됐다. 서민 속을 뒤집고 준법의지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위장전입, 탈세, 부동산투기, 병역기피, 논문표절 등은 서민세상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만약 이런 치부가 드러나면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8·8 개각 청문회에서 그들이 각종 제기된 의혹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 “죄송하다”, “송구스럽다”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서민세상에서야 보기 드문 몹쓸 짓이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일 뿐이다. 그 많은 사례 중에 하나를 콕 집어 설명하라고 하니 개별사안에 대해 세세하게 기억하는 자체가 무리 아닌가?

그들이 서민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특권의식이 튀어나왔다. 김태호 총리내정자의 “도지사가 여관에서 잘 수 없지 않느냐”는 말인데 서울 출장을 와서 하루 방값이 93만원하는 호텔을 이용한 게 너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서민은 도지사가 여관에서 잠을 자면 흉이 되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선거비 마련 과정의 은행법 위반 여부 질문에서도 그는 한결같이 자신은 처벌대상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대출을 해준 은행과 업무 담당자가 처벌 위기에 놓인 상황에 대해선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또 문제 있는 장관, 청장의 해임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들 세상에서는 나만 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줄도 이제야 알았다.

공정한 사회 이미 물 건너가

이명박 정권에서 위장전입, 탈세, 부동산투기, 병역기피는 고위공직자의 기본 자질이라는 비아냥이 있다. 대단하지 않은가? 뻔뻔하다고 욕할 힘도, 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들은 그들 세상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강조한 공정한 사회에 혹시 그들 세상의 특권과 서민 세상의 책무 등 각자 삶의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중국 유가(儒家)의 기본적 경전인 사서오경(四書五經)중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인데 인물됨됨이를 논할 때 많이 쓴다. 심신(心身)을 닦고 집안을 정제(整齊)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天下)를 평정(平定)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그들 사는 방식을 고집하고 싶으면 그들 세상으로 돌아가는 게 마땅하다. 서민 세상에서 지도층이랍시고 행세를 하고 싶으면 서민 세상의 룰을 따라야 할 게 아닌가. 서민 세상에서는 치국(治國)의 전제 조건이 수신(修身)인만큼 이미 사퇴한 이들 이외의 나머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는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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