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삼한사온 사계절이 뚜렷하고 매달 절기가 있어 일상생활은 물론 옛날 농사법은 이 체계에 따르면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음력 7월 15일, 이 무렵이면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와 백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은 데서 유래한 백중(百中)으로 백종(百種)·중원(中元)·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옛 사람들은 세시풍속으로 새로운 음식이나 과일이 나오면 조상들에게 먼저 올렸다. 민간에서는 백중일에 사당에 천신(薦新) 차례를 올리거나 돌아가신 부모의 혼을 불러 망혼 제사를 지내고 남녀가 모여 음식을 먹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

일제강점기 때 수출되기도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백중 다음날부터 추석까지 한달 동안 길쌈내기를 하며 농사일로 힘든 일을 잠시 쉬며 휴식을 취했다. 특히 신라는 향가에서 보여주듯이 남녀간의 로맨스가 자유롭던 사회로 이 기간에는 모든 사람들이 어울려 노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백중일이 축제일이 된 것은 논에 김매기가 끝나고 음력 7월 중순께이면 이삭이 오르기 시작하는 수잉기(穗孕期) 무렵이다. 그래서 바쁜 날에 더 일을 하기 위해 힘을 보충하며 동네 사람들과 화합을 다지는 두레의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 지역 초정리에서도 연중 백중 놀이가 성행했었다. 조선 4대 임금 세종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 머무른 이후 유명해진 초정약수는 일제 강점기에는 외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암울했던 시절 초정리에는 각처에서 모인 장정들이 씨름을 하면서 나라 잃은 한 많은 설움을 한판 승부로 달랬었는지도 모른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백중일에는 “湖西俗 以十五日老少出市飮食爲樂 又爲角力之戱(충청도 풍속에 노소를 막론하고 7월 15일에는 거리에 나가 마시고 먹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며 또 씨름놀이도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예전에는 백중을 전후로 장이 서는데 이를 백중장(百中場)이라 했다. 청주지역에서는 백중놀이가 ‘머슴날 잔캄로 더욱 알려져 있다. 1970년대만 해도 머슴이 있는 집에서는 이 날 하루는 일손을 쉬고 머슴에게 적삼 한 벌과 용돈을 지불했으며 백중장에 가서 하루를 즐기도록 했다. 잔치 전날에는 ‘골맥이 한다’고 하여 인절미를 대접했으며 백중일에는 한 해 농사를 잘 지은 집의 머슴을 소나 가마에 태워 마을을 돌면서 사기를 북돋아 줬다.

1923년에 오오꾸마 쇼지(大態春峰)가 저술한 ‘청주연혁지’와 1926년 9월 28일과 1928년 8월 24일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초정 탄산천은 음력 7월 10일부터 17일까지 일반에게 개방했으며 백중부터 약 반달 가량 그 근처 사람과 가까운 읍면 사람들이 모두 모여 목욕을 했다고 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7월 8월께에는 초정약수의 약효가 제일 좋다고 하여 복날에는 많은 주민들이 초정을 찾았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백중장이 성시를 이루면 씨름판과 장치기 등의 놀이가 초정 일원에서도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 성종 때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이륙(李陸)의 ‘청파극담(靑坡劇談)’에 의하면, “땅 속으로부터 물이 솟아 나오는데 아주 차갑고 물맛이 썼다. 뱀이나 개구리가 이 물 속으로 뛰어들면 곧바로 죽었다. … 초수리 밑에 있는 수십마지기의 논들도 이 물로 농사를 지으니 땅이 엄청나게 비옥했다”고 하는데 지금 초정약수는 수질이 점점 저하되고 있어 긴급 대책이 없으면 브랜드 가치가 저락될 위기에 있다.

세계 3대 광천수 위상 되찾았으면

청원군에서는 소도읍가꾸기 사업 일환으로 초정행궁 복원과 함께 관광자원화 한다지만 근본적인 약수 수질 보호에 대해서는 대책 없는 성급한 정책보다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으로 세계 3대 광천수의 위상을 되찾았으면 한다.

고대사회 종교의식에서 실시됐던 축제가 오늘날 지역축제로 거듭나 사회통합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간 초정일원에서는 1990년대 가을에 청원약수아가씨 선발대회를 개최했지만 여성의 성상품화라는 사회적 논란으로 중단됐다.

2003년부터 개최된 초정약수 축제가 지금까지 열리고 있으나 군내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민의 결속은 물론 초정약수의 세계적인 홍보와 함께 부가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세계인이 참여하는 길쌈대회 또는 장사씨름대회를 재연하는 것은 어떨까?

오늘날 물질문명의 이기에 의해 우리의 전통풍속이 거의 사라지고 한식과 단오제와 같은 일부 절기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전통문화의 계승이야말로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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