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에서 후배의 소개로 귀한 사람들을 만났다. 인사 소개에서 상대방은 내 명함을 받으며 “충북 제천, 경치가 무척 좋은 곳이죠”라며 내 고향을 격찬해 줬다. 다른 한 사람은 “제천이 음악영화제가 열리는 곳이지요?”라고 물었다.

그들은 제천에 한 번도 와 보지 않았지만 음악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말 속엔 제천이 맑은 공기, 인심 좋고 문화 인프라가 잘 꾸며진 살기 좋은 도시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 했다.

충북 제천 지역은 얼마 전까지 철도의 요충지, 시멘트 산업이 발달된 먼지 펄펄 날리는 ‘회색도시’로 인식돼 왔다. 중앙선과 태백선, 충북선, 경부선 등 시끄러운 기차 굉음을 들으며 전국 어디든  갈수 있는 철도의 요충지였다. 또 석회석 광산과 시멘트 생산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회색 이미지의 도시 색을 가지고 있었다.

제천, 회색도시서 영상·한방도시로

하지만 지금은 천혜의 자연과 청풍호가 함께 어울려 제천 만이 가진 독특한 인심과 혁신으로 영상문화와 한방건강도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도시의 이미지와 색을 바꿔 놓은 것이다.

올해로 6회 째를 맞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지난 12일부터 물을 찾는 영화 마니아들과 바람 난 음악가들이 한 데 어울려 제천을 뒤집어 놓고 있다.

한 여름 밤 청풍호반의 탁 트인 공간에서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사람소리를 들으며 펼쳐지는 영화와 음악 속에 빠진 마니아들은 자리를 떠나질 못한다. 유명 가수들이 출연한 라이브 콘서트의 산물인 ‘원 썸머 나잇’에는 지역과 외지에서 찾아든 젊은이들이 한 데 어울려 감동적인 무대에 빠져든다.

지난해 음악영화제를 찾은 13만명 중 75%는 20∼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의 관광자원인 전국의 젊은이들이 제천을 기억하고 다시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천시는 2005년 첫 음악영화제를 열면서 영상문화산업을 이끄는 중부권 대표영화축제로 자리 잡는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인구 15만도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서 과연 음악영화로 도시 이미지를 높이고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 속에서 6회 째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세련된 수준의 알찬 영상축제가 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국제성과 세계성, 현대성을 따져볼 때 경쟁력을 분명 가지고 있다는 격려도 보내고 있다.

전국 최초의 음악영화제는 자연친화적인 휴양영화제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다른 영화제와 달리 야외에 판을 벌여서 가수들과 마니아들은 꽉 막힌 공간에서 벗어나 시원한 강바람과 초롱한 별을 보며 예술축제를 벌이고 있다.

최근 이 음악영화제 폐지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지난달 제천시에 입성한 최명현 시장은 지역 경기에 맞지 않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소외된 축제라며 폐지를 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 시장은 시민들의 여론과 전문가의 공청회를 통해 음악영화제 존폐 여부를 결정짓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최 시장이 전임 시장인 엄태영의 흔적 지우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음악영화제를 만든 시장은 엄태영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시작한 것도 역사지만 바통을 이어 받아 전국적인 문화예술축제로 승화시키는 것 또한 최 시장의 역사다.

제천음악영화제가 지역 브랜드 상승에 큰 힘이 돼 온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전임 시장의 역사고 흔적이라고, 폐지 쪽으로 마음이 가면 모든 것이 꼴 보기 싫을 수 있다.

그동안 음악영화제가 지역 주민은 외면한 채 외부 인사들의 축제로 이뤄졌다는 지적도 수없이 받았다. 사실이다. 집행위는 그동안 축제 성격 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올해도 한 프로그래머가 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을 상대로 취업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잡음이 일고 있다.

지역 축제의 주인공은 당연 시민이다. 시민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는 축제로 전락한다. 미래의 자생력과 차별적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판을 새롭게 짜야 한다.

음악영화제, 지역적 공감대 필요

외지인을 끌어들이기 위한 축제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방의 세계화라는 트렌드 흐름으로 볼 때 지금의 방향과 추진 마인드에는 문제가 있다. 자칫하면 지역문화와 산업적 공생 관계 없이 몇 몇 사람들이 폼 잡는 축제로 전락할 수 있다.

지역민들이 주체가 돼 제천을 찾는 마니아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즐기며 어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정성과 제천 만이 가진 독특한 인심, 세계적 음악·영화예술 진수가 제천 문화로 상생될 수 있다.

지역 주민들도 열린 사고방식을 갖고 재평가하려는 노력을 가져야 한다. 편협된 생각으로 비판만을 늘어놓아서는 지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화나 예술을 경제 논리로 접근해서는 위험하다. 먹고 사는 것 만이 최선이 아니다. 차별화를 통해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이를 통해 지역적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혁신적인 고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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